“흐린 가을 하늘 아래 고요하게”…철원에서 만나는 자연과 평화의 시간
요즘은 흐린 가을 하늘 아래 조용한 여행을 택하는 이들이 늘었다. 예전엔 생소했던 DMZ 인근의 작은 마을과 절경들이, 이제는 일상의 쉼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여기는 전쟁의 흔적과 자연의 신비가 엇갈리듯 공존하는 곳이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25도를 오가는 기온, 살짝 건조한 바람, 가끔 흐르는 강물 소리에 한층 마음이 차분해진다. 철원 여행을 계획한 김선호(35)씨는 “도시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조용한 자연에서 나를 되돌아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통계에서는 DMZ 평화관광지와 자연휴양림을 방문하는 국내 여행객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한탄강 주상절리와 고석정, 도피안사처럼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진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역사와 생태의 재발견’이라 부른다. 문화해설사 최정은 씨는 “도피안사처럼 오래된 산사에서 불상과 석탑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요해진다”며 “산사의 단풍과 한탄강의 절경은 빠른 일상에 지친 마음을 자연스럽게 어루만진다”고 표현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한적해서 여유롭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DMZ에서 만난 두루미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등의 이야기들이 커뮤니티 곳곳에 올라온다. 두루미평화타운을 찾은 가족부터, 소규모 산책길을 즐기는 연인까지 여행자의 표정은 닮아 있었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느릿해진 여행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자연, 역사, 그리고 평화를 동시에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철원을 다시 찾게 만드는 힘으로 느껴진다. 고석정 계곡에 부는 바람, 두루미평화타운을 순환하는 따뜻한 시선, 신라의 흔적을 품은 오래된 산사 속 단풍까지. 오롯이 나를 위한 속도의 여행에서 우리는 조금 느긋해질 수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