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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곧 사진관"…오경수, IT 리더의 디지털 기록 실험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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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카메라가 전문 장비를 대체하며 디지털 창작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IT 업계에서 30여 년간 활동해 온 오경수 전 롯데정보통신 사장이 고향 제주 서귀포에서 포착한 일상의 풍경을 스마트폰으로만 기록한 사진전을 연다. 정보기술 경영 1세대 리더로 꼽히는 인물이 모바일 디바이스를 매개로 창작자 역할까지 확장하면서, 디지털 기술이 개인의 기록 방식과 표현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IT 경영 경험과 디지털 기록 기술이 결합된 이번 전시를 데이터 시대의 새로운 생활 아카이브 실험으로 보고 있다.

 

오경수 작가는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서초구 한국통신인터넷기술 사옥에서 첫 개인전 서귀포 생활 사진전을 개최한다. 모든 출품작은 별도의 고가 장비 없이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사진들로,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품은 모바일 기기가 사실상 개인용 사진 플랫폼으로 진화했음을 상징한다. 사진전에는 서귀포의 바다와 한라산, 귤밭, 올레길 등에서 포착한 40여 점이 선보인다. 특히 매일 새벽 바닷가에서 기록한 여명과 일출 장면은 고해상도 이미지 센서와 소프트웨어 보정 기술을 결합한 현대 스마트폰 카메라의 표현력을 그대로 드러낸다.

오 작가는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삼성그룹 비서실 재직 당시 그룹 내 협업 시스템 구축을 맡으며 IT 업계에 입문했다. 당시 그가 개발과 운영을 맡았던 토픽스는 현재 삼성 그룹웨어 싱글의 전신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업무용 플랫폼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이후 삼성 미주 IT센터장과 정보보안 기업 시큐아이 대표, 롯데정보통신과 제주개발공사 사장을 역임하는 등 정보시스템과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 온 경력을 쌓았다. 기업 내에서는 데이터와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전달하는 시스템 설계에 주력했다면, 이번 사진전에서는 생활 속 순간을 시각 데이터로 남기는 개인 기록자로 역할을 바꾼 셈이다.

 

2017년 40여 년의 서울 직장생활을 마치고 고향 제주로 돌아간 그는 서귀포의 일상을 꾸준히 스마트폰으로 기록해 왔다. 과거라면 경험을 텍스트 중심 메모와 문서로 정리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와 클라우드 저장소를 활용해 이미지 중심의 라이프 로그를 남기는 방식으로 기록 패턴을 전환한 것이다. 대용량 저장공간과 자동 백업 기능, 위치와 시간 정보가 결합된 메타데이터 덕분에 사진은 단순한 풍경 이미지가 아니라, 특정 시점과 장소의 생활 데이터를 아카이브하는 수단으로 확장됐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 다수는 별도의 후반 작업보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보정 기능과 필터를 활용해 완성됐다. 카메라 앱 내 연산 사진 기술은 노출과 색감을 자동으로 보정하고, HDR 기능을 통해 어두운 영역과 밝은 영역을 동시에 살려 현장의 분위기를 재현한다. IT 업계에서는 이러한 소프트웨어 기반 촬영 기술 덕분에 비전문가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사진 제작의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졌다고 분석한다. 오 작가가 일상 속에서 포착한 서귀포의 풍광이 전시장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러한 디지털 카메라 기술의 진화가 자리한다.

 

오 작가는 메모가 생각을 붙잡는 기술이었다면, 사진은 찰나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메모라고 말하며 사진을 정보기술의 연장선으로 해석했다. 디지털 환경에서 텍스트, 이미지, 음성을 동일한 데이터 형식으로 저장하고 검색할 수 있게 되면서 기록의 개념이 문서 중심에서 멀티미디어 데이터 전체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진은 촬영 시각과 위치 정보, 촬영 기기 정보까지 함께 기록해 나중에 검색과 분류가 가능한 구조를 띤다. 이러한 구조는 개인의 삶 자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생활 로그 기술로 이어지고 있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서울에서 진행된 뒤, 다음달 15일부터 사흘간 제주 서귀포시 서홍동 카페 제주처럼에서도 이어진다. 수도권 관객을 대상으로 한 1차 전시 이후 촬영지인 서귀포 현지에서 다시 작품을 선보이면서, 디지털 기술로 기록된 지역 이미지를 지역 사회와 공유하는 순환 구조를 노린 것이다. 오 작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널리 알리는 민간 홍보대사 역할도 자임했다. IT 업계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디지털 기술이 기업의 정보 시스템을 넘어 지역과 개인의 삶까지 어떻게 기록하고 확산시키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디지털 기록 도구로 진화한 스마트폰이 예술과 지역, 일상을 잇는 플랫폼으로 어디까지 확장될지 지켜보고 있다.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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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수#롯데정보통신#서귀포생활사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