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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전자약 GVD-01”…아리바이오, 탐색임상서 인지 개선 확인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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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전자약 기술이 알츠하이머병 치료 옵션 지형을 흔들 수 있는 초기 데이터를 내놨다. 아리바이오가 개발 중인 비침습 전자약 GVD-01이 탐색 임상에서 인지 기능 개선과 뇌 혈류 보존 신호를 확인했다. 전기·약물 병행이 아닌 음향진동 자극만으로 신경망을 조절하는 접근이라, 기존 항치매약 중심 치료 전략을 보완할 수 있을지 업계 관심이 모인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가 전자약 기반 치매 치료 경쟁 구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리바이오는 27일 알츠하이머병 전자약 GVD-01의 탐색 임상에서 알츠하이머병 인지기능 평가척도 ADAS-Cog13 기준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GVD-01은 약물이 아닌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전자약으로,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 감소하는 40헤르츠 감마파와 뇌 혈류를 보정해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사 측은 이번 결과를 토대로 내년 확증 임상에 진입하고, 2027년 미국 식품의약국과 국내외 주요 국가에서 의료기기 허가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GVD-01의 핵심 기술은 경두개 음향진동자극, tVAS에 기반한다. 두개골 밖에서 특정 주파수의 미세한 음향·기계적 진동을 두뇌에 전달해 신경세포 집단의 동시 발화, 이른바 신경망 동기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특히 40헤르츠 감마파는 기억과 주의, 인지 처리에 관여하는 뇌파 대역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는 tVAS를 통해 알츠하이머 환자에서 저하된 감마파 활동을 자극해 시냅스 기능을 보호하고, 동시에 뇌 혈류를 높여 대사 기능 악화를 늦추는 것을 목표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전기 자극 기반 뇌심부자극이나 경두개직류자극 대비 비침습성과 자가 사용 편의성이 차별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탐색 임상은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단일 기관 무작위·이중눈가림·샴 대조 방식으로 진행됐다. 환자들은 헤드밴드 형태의 GVD-01 또는 샴 기기를 하루 30분씩 24주간 착용했다. 실제 자극이 들어가는 전자약과 달리 샴 기기는 형태와 사용 경험은 유사하지만 치료 자극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돼, 플라시보 효과를 배제하는 데 사용된다. 연구진은 이 기간 동안 인지 기능, 임상 평가척도, 주의집중력, 뇌 영상 지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했다.

 

주요 평가 변수인 ADAS-Cog13에서 전자약 사용군은 24주 후 인지 기능이 약 5퍼센트 개선된 반면, 샴 대조군은 14퍼센트 악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두 집단의 인지기능 점수 차이는 4.19점으로 나타났다. 통상 ADAS-Cog13 점수가 높을수록 인지 기능 저하가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치료군에서 오히려 점수가 개선된 것은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서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역전시킬 여지가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회사는 통계적 유의성이 확보됐다고 밝혔지만, 상세 p값 등 추가 데이터는 확증 임상 설계와 함께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인지 기능 외 보조 지표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관찰됐다. 임상 치매평가척도 CDR-SB 수치는 24주 후 GVD-01 사용군에서 0.3점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샴 군에서는 0.6점 증가했다. 알츠하이머병 진행 과정에서 CDR-SB 점수는 꾸준히 상승하는데, 치료군에서 악화 속도가 절반 수준으로 억제된 셈이다. 주의집중력지수 AQS에서도 전자약 사용군이 대조군 대비 평균적인 개선을 보이며, 인지 영역 전반에서 일관된 효과 패턴을 나타냈다고 회사는 전했다.

 

뇌 기능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영상 지표 분석도 병행됐다. 단일광자 방출 단층촬영 SPECT 검사에서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의 혈류 감소 폭이 전자약 사용군에서 더 작게 나타났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은 이 결과를 두고 GVD-01이 뇌 혈류를 일정 수준 보존해 신경세포 기능 악화를 늦출 여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뇌 부피 보존 효과를 시사하는 데이터도 관찰돼, 향후 확증 임상에서 구조적 변화와 기능적 변화를 동시에 검증하는 전략을 세울 계획이다.

 

전자약을 활용한 치매 치료 시도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는 분야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광자극을 통해 40헤르츠 시각 자극을 가하거나, 경두개 전기 자극으로 감마파를 조절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다만 실제로 의료기기 허가를 받고 상용화 단계에 이른 사례는 제한적이며, 특히 국내에서는 알츠하이머병 대상 전자약 후보가 임상 단계까지 진입한 경우가 드물다. 이런 점에서 GVD-01의 탐색 임상 결과는 국내 전자약 기반 치매 치료 연구에서 이정표 성격을 가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 측면에서 치매 전자약은 기존 항체 치료제와 다른 포지셔닝을 노릴 수 있다. 베타아밀로이드 제거를 목표로 하는 항체 약물은 뇌부종, 미세출혈 등 부작용 관리와 고가 약가가 상용화의 주요 장벽으로 꼽힌다. 반면 비침습 전자약은 반복 사용을 전제로 하면서도 부작용 부담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고, 인지 재활 프로그램이나 디지털 치료제와 결합한 통합 관리 모델을 설계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효과 크기와 지속 기간, 환자 순응도에 따라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채택 수준이 갈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규제 측면에서는 GVD-01이 약물이 아닌 의료기기 형태 전자약인 만큼, 허가 절차가 약간 다르게 전개될 전망이다. 미국 FDA는 신경조절 기기와 디지털 치료제를 대상으로 별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며 임상 데이터 요구 수준과 안전성 기준을 구체화하는 흐름이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와 전자약에 대한 심사 기준을 정비하고 있지만, 치매처럼 중증 신경질환을 대상으로 할 경우 임상 규모와 추적 기간을 어느 수준으로 볼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아리바이오는 2027년을 목표로 글로벌 의료기기 허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각국 규제 당국과의 사전 협의 내용에 따라 개발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윤 교수는 GVD-01 탐색 임상 결과에 대해 전자약이 인지 기능뿐 아니라 뇌 혈류와 뇌 부피 보존에서도 긍정적 신호를 보였다며, 보다 큰 규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확증 임상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을 재검증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확증 임상에서 효과 크기와 재현성이 확인될 경우, 치매 전자약이 항치매약과 병용 또는 단독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과 보험 체계 속에 안착할 수 있을지, 전자약 시대를 여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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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바이오#gvd-01#알츠하이머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