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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심 판결문 더 보게 한다”…여야, 형소법·은행법 등 본회의 상정 합의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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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법안을 둘러싼 긴장과 민생 법안 처리 필요성이 교차하는 가운데 여야가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법안을 포함한 일부 안건의 본회의 상정에 합의했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대치는 계속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10일 오후 국회에서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여한 이른바 2+2 회동을 열고 11일 국회 본회의를 개최해 형사소송법 개정안, 은행법 개정안,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 등 3건의 법안을 상정하기로 합의했다. 회동은 정국 경색 속에서도 최소한의 입법 처리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실무 협의 차원에서 진행됐다.

다만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안 등에 강하게 반발하며 기존에 돌입한 필리버스터를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필리버스터는 무제한 토론을 통해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는 절차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회동 후 브리핑에서 국민의힘에 민생법안과 비쟁점 법안에 한해서는 필리버스터를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문 수석부대표는 국민의힘이 끝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전하며 민생 현안 처리 지연에 대한 우려를 강조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는 이와 달리 사법개혁 법안을 강하게 겨냥했다. 유 수석부대표는 브리핑에서 사법파괴 5대 악법과 입틀막 3대 악법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고 표현하며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서로 법안의 성격을 대립적으로 규정하면서 협상의 여지는 좁은 상태로 드러났다.

 

11일 본회의에서는 먼저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처리될 전망이다. 이 법안에 대해 국민의힘이 전날 실시한 필리버스터가 이미 종료돼 표결 절차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회 다수 의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처리 속도를 높일 경우, 법안 통과는 무리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가맹사업법 개정안 처리 이후 형사소송법, 은행법,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이 순차적으로 상정된다. 쟁점 성격이 다른 법안들이 같은 본회의에서 함께 다뤄지면서, 필리버스터 전개 방식과 처리 속도를 둘러싼 여야 전략도 분주해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마련한 사법개혁안 중 하나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를 넓히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현재 대법원 판결문 중심으로 이뤄지는 공개 체계를 1심·2심 재판까지 확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재판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법원 업무 부담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어, 시행 과정에서 후속 논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던 은행법 개정안은 가산금리 산정 시 보험료와 각종 출연금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해 온 금리 산정 구조 개선 요구가 입법으로 연결된 형태다. 여야 모두 서민·중소기업 부담 완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금융권 수익 구조와 대출 공급 여력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신중론도 교차하고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에는 접경지역에서 경찰관이 군사적·외교적 긴장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전단 살포 등을 목적으로 위험구역에 출입하는 행위가 포착될 경우, 관계인에게 사전 경고를 하고 필요시 긴급 제지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접경지역 전단 살포를 둘러싼 남북 관계 악화 우려와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오래 이어져 왔던 만큼, 법안 심사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 충돌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여야는 이날 회동에서 입법 외 제도 논의와 관련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감사원장 인사청문특별위원회 구성, 연금개혁특별위원회 활동 기간 연장에도 의견을 모았다. 정개특위는 더불어민주당 9명, 국민의힘 8명, 비교섭단체 1명 등 총 18명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선거제도와 정당 구조 개편 논의가 정개특위를 중심으로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거듭 요청해 온 특별감찰관 임명 문제는 이번 협의에서도 진전이 없었다. 문진석 수석부대표는 브리핑에서 특별감찰관 관련 논의는 따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위 공직자 감시 장치 강화를 요구하는 여론과 대통령실의 요구가 반복되는 가운데 국회 논의가 공전하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여야가 형사소송법과 은행법 등 일부 법안 상정에는 공감대를 찾았지만, 사법개혁 전반을 둘러싼 인식 차와 필리버스터 전략은 여전히 팽팽하다. 11일 본회의에서는 가맹사업법 개정안 처리와 함께 쟁점 법안 논의 방향을 두고 다시 한 번 공방이 예상된다. 국회는 정개특위와 연금특위 등 상설·특별기구를 가동해 제도 개혁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지만,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대치가 장기화할 경우 민생 법안 처리 지연에 대한 책임 공방도 거세질 전망이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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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형사소송법개정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