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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다시 평양으로"…제주도, 특산품 지원·한라산 백두산 사진전으로 남북 교류 재가동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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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교류 재개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제주도가 지방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과 평화 행보에 속도를 내면서 중앙정부와의 공조, 남북관계 흐름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제주도는 19일 제주도청에서 제9기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제2차 회의를 열고 감귤과 제주 흑돼지 등 제주 특산품을 북한에 보내는 사업과 한라산과 백두산을 잇는 환경·평화 사진전 개최 계획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남북 교류 관련 전문가와 도 관계자 등이 참석해 향후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제주도는 우선 제주 특산품 보내기 사업을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감귤과 제주 흑돼지 등을 중심으로 지원 품목과 물량, 운송 방식 등을 구체화해 중앙정부와 협의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인도적 성격과 지역 특성을 결합한 지방정부 주도 남북 협력 모델을 복원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환경·평화 이미지를 내세운 상징적 사업도 준비 중이다. 도는 한라산-백두산 환경·평화 사진전을 내년께 개최하는 방향으로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남북이 공유하는 산악 생태와 자연유산을 소재로 삼아 평화 담론을 확산하겠다는 구상이다.

 

제주도의 남북 교류 시도는 과거 경험을 토대로 한다. 제주도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감귤 4만8천t, 당근 1만8천t 등 총 6만6천t을 북한에 지원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남북 협력사업의 효시로 평가받았다. 당시 감귤 지원은 지방정부가 주도한 대표적 인도적 지원 사례로 꼽히며 중앙정부 대북정책과 병행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10년 5·24 대북 제재 조치 이후 남북 교류 사업은 중단됐다. 사업이 멈춘 기간에도 제주도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을 꾸준히 쌓아왔고, 지난해 말 기준 87억 원을 조성한 상태다. 도는 향후 중앙정부 승인과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해 기금 활용 계획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이날 회의에서 제주도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제주는 예로부터 평화와 교류의 섬, 동북아 협력의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 뒤 "한반도 평화 분위기 확산을 위한 중심적 역할을 제주가 시작한다"고 밝혔다. 지방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평화 메시지 발신을 통해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서 오 지사는 이달 5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남북 교류 협력사업 재개 방안을 논의했다. 두 사람은 내년부터 남북 교류사업 재개를 추진하는 데 뜻을 모았고, 제주도의 특성을 살린 인도적 지원과 환경 협력 사업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실무 협의를 이어가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지방정부의 인도적 교류 확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대북 제재와 국제 정세를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병존하고 있다. 보수 성향 인사들은 유엔 대북 제재 체계와 한미 공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업을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고, 진보 성향 인사들은 지방정부 역할을 확대해 경색된 남북관계에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주도의 행보가 향후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남북 교류 재개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긴장 수위와 국제사회 대북 제재 기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과 문화·환경 협력은 비교적 수용성이 높은 분야로 꼽혀 왔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 분담, 법적·재정적 지원 논의도 뒤따를 전망이다.

 

제주도는 향후 통일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이어가며 사업 추진 시기와 방식, 대북 접촉 절차를 조율할 계획이다. 국회 역시 관련 남북 교류 예산과 제도 개선 필요성을 둘러싸고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지방정부 주도 남북 교류 모델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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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오영훈#남북교류협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