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는 막았지만 리스크는 남았다”…정부, ISDS 6건 줄소송 속 긴장 지속
국제투자분쟁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론스타와의 13년 소송전에서 한국 정부가 완승을 거뒀지만, 여전히 6건의 국제투자분쟁(ISDS)이 줄소송 형태로 이어지며 법무부와 관계 부처가 긴장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19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는 모두 10건이다. 이 가운데 5건은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고, 론스타 사건과 미국계 사모펀드 메이슨 사건은 본안 중재는 마무리됐지만 후속 조치가 남아 진행 중인 사건으로 분류돼 총 6건이 현재 진행형이다.

가장 주목받는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기한 분쟁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약 7억7천만 달러, 한화로 약 1조1천억 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2018년 ISDS를 제기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23년 6월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한국 정부에 약 5천358만 달러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같은 해 7월 중재지인 영국 법원을 상대로 재판 관할권에 문제가 있다며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지난해 8월 한국 정부의 청구가 영국 중재법상 재판 적격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각하했다. 그러나 영국 항소법원은 올해 7월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이고 사건을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엘리엇 사건의 최종 귀추가 영국 법원의 재심리 결과에 달린 셈이다.
미국 사모펀드 메이슨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제기한 사건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분쟁이다. 메이슨은 한국 정부의 개입으로 약 2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2018년 ISDS를 제기했다.
PCA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메이슨 측 주장을 일부 인정해 한국 정부에 3천203만 달러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정부는 중재지인 싱가포르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냈으나, 싱가포르 법원은 지난 6월 정부 주장을 기각했다.
정부는 항소를 포기했고, 그 결과 배상 판정은 그대로 확정됐다. 법무부는 지난 7월 메이슨 측에 원천징수액을 제외한 총 746억 원을 지급했다. 사실상 분쟁은 마무리됐지만, 조세 처리 등 후속 절차가 남아 있어 아직 종료 사건으로는 분류하지 않고 있다.
이란 다야니 가문과의 분쟁도 적지 않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으로 꼽힌다. 다야니 가문은 2015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과정에서 한국 채권단에 납부한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ISDS를 제기해 승소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 조치 등을 이유로 배상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다야니 측은 2021년 2차 소송에 착수했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승강기 기업 쉰들러의 소송도 계속 진행 중이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금융감독과 조사 의무를 소홀히 해 최소 3억 달러의 손해가 났다고 주장하며 2018년 ISDS를 제기했다. 현재 중재판정부에서 절차가 이어지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이 제기한 사건도 쌓여 있다. 중국 국적 투자자 민 모 씨는 2020년 국내 금융기관에서 수천억 원을 대출받은 뒤 상환하지 못해 담보를 상실하자, 한국 정부가 한중 투자협정을 위반했다며 1억9천150만 달러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5월 한국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해 전부 승소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민 씨 측이 판정에 불복해 취소 신청을 제기하면서 절차가 계속되고 있다.
2021년에는 미국 국적 투자자가 부산광역시 수영구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토지가 수용돼 손해를 봤다며 537만 달러, 약 68억8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ISDS를 제기했다. 이 사건 역시 중재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론스타 사건 승소 전까지 ISDS에서 승소한 사례가 한 건에 불과했다. 2018년 미국 국적 투자자가 자신의 부동산이 재개발되는 과정에서 수용보상금이 시장 가격에 미치지 못했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3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한 사건이 그것이다. 판정부는 2019년 해당 부동산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정의한 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아랍에미리트 부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이 소유한 회사 하노칼이 제기했던 사건도 있었다. 하노칼은 2010년 현대오일뱅크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부과된 세금이 한·네덜란드 투자보호협정에 위반된다며 2015년 ISDS를 신청했지만, 1년 만에 스스로 절차를 취하했다.
법조계와 외교·통상 라인에서는 론스타 사건 완승을 계기로 정부의 대응 역량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론스타 중재판정을 전부 취소시킨 경험이 향후 엘리엇 등 다른 ISDS에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뒤따랐다.
법무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ISDS 취소 인용 사례가 세계적으로 극히 드물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ISDS 전부취소 인용률은 약 1.6%, 부분취소를 포함하더라도 5%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100건 중 2건에서 5건 정도만 취소가 인용되는 구조 속에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 사건을 뒤집어 냈다는 의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론스타 사건 승소로 재정 부담을 피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엘리엇·다야니 등 남은 사건의 규모와 선례 효과를 감안하면 정부의 긴장 상태가 쉽게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재개발 보상 등 국내 정치·경제 이슈가 국제 중재의 쟁점으로 옮겨간 구조에 대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남아 있는 ISDS 사건에서 법무부, 외교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 합동 대응 체계를 유지하면서, 향후 유사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투자협정·세제·행정 절차 개선 방안도 함께 검토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