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의대증원 2천명 근거 미흡했다"…감사원, 윤석열 정부 인력추계·배정 과정 부실 지적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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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2천명 일괄 증원을 둘러싼 갈등은 어느새 정국의 고착 구조가 됐다. 그 이면을 추적해 보면, 증원 규모와 배분을 둘러싼 결정 과정에는 정치적 의지와 불충분한 통계 추계가 겹쳐 있었다는 감사원의 평가가 드러났다.

 

감사원은 27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 2천명 증원 추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의 의사 인력 수급 추계 및 대학별 정원 배정 전반에 절차적·내용적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는 올해 2월 국회가 국회법에 따라 의대 정원 증원 추진 전 과정을 감사해 달라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2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를 거쳐 2035년 의사 1만5천명 부족을 근거로 의대 정원 2천명 일괄 증원 방안을 확정했다. 당시 복지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에서 제시한 의사 1만명 부족 추계에, 복지부 의뢰 연구자 A씨가 제시한 현재 시점 부족 인력 4천786명을 더해 1만5천명 부족이라는 수치를 도출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 추계 방식에 대해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한 추계를 근거로 증원 규모를 정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연구자 A씨의 분석은 지역 간 의사 수급 불균형을 파악하는 연구로, 전국 총량 차원의 의사 부족 인원을 산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구자 A씨 역시 감사 기간 같은 취지의 의견을 감사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감사원은 설령 현재 부족한 의사 수를 5천명 수준으로 보더라도, 복지부가 고령화와 인구구조 변화 효과 등 중장기 변수에 대한 보정 없이 기존 1만명 부족 추계와 단순 합산해 전체 수치를 부정확하게 산출했다고 판단했다. 즉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는 과정에서 전제 조건과 범위를 세밀하게 맞추지 않았다는 취지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 의중이 비정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감사원에 따르면 애초 복지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연간 400명 증원안보다 100명 많은 500명 수준으로 내부 논의를 시작하려 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충분히 늘리라"고 거듭 주문하며 증원 규모가 1천명, 이후 2천명으로 확대됐다.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회수석에게 "그래서 복지부는 2천명으로 가는 것이냐"고 묻는 등 여러 차례 증원 방향에 대한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감사원은 윤 전 대통령이 구체적인 수치의 근거를 주변에 설명한 정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보다 앞서 당시 국정기획수석이 워라밸 등 근무 환경 변화 요인을 반영한 새로운 추계를 요구해 복지부가 추가 계산을 했으나, 오히려 부족 인원이 5천800여명 수준으로 줄어 이 추계는 정책에 반영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정책 결정 절차 측면에서도 문제점을 짚었다. 정부가 당시 의사단체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고, 발표 직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위원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논의 시간을 제공하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의사 수급 전망, 지역별 편차, 의료전달체계 개편방안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심의가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학별 증원 규모 배정 과정 역시 도마에 올랐다. 감사원은 교육부가 구성한 배정위원회가 대학 교육 여건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전문성과 균형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배정위원 7명 대부분이 연구자나 공직자 출신으로, 의과대학 교수로서 교육과정을 직접 설계·운영한 경험이 없어 각 대학이 제출한 교육 여건과 향후 계획을 면밀히 평가하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교육부가 대학 유형별 배정 기준을 제시해 놓고도 실제 적용 과정에서 일관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교육부는 당시 수도권 병원의 임상 실습 시간 비율 과다, 지역인재전형 법정 비율 미준수 등의 사유를 들어 6개 대학의 배정 인원을 조정했다. 그러나 같은 사유가 있는 일부 대학에는 감액 조정을 적용하지 않는 등 특정 대학에만 불리한 기준을 적용한 사례가 확인됐다.

 

현장 검증 부실도 문제로 지적됐다. 배정위원들은 대학의 학생 수용 역량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현장 점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지만, 교육부는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관련 보고서를 활용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감사 결과 실제로는 해당 보고서조차 배정위원들에게 제공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과정이 정원 배정의 타당성과 형평성을 떨어뜨렸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공무원의 위원 위촉 과정, 배정위원회 회의록 미작성, 관련 메모 파기 등의 사안에 대해 감사원은 "부적정하다고 볼 여지는 있으나 현행 법령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제도적 허점과 관행이 맞물린 사안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 대목이다.

 

감사 과정에서 이관섭 전 대통령 비서실장, 장상윤 전 사회수석비서관, 조규홍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박민수 전 보건복지부 차관 등 핵심 당국자들에 대한 대면 조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감사원이 대통령 부부의 책임 소재 규명보다는 정책 형성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감사가 새 정부가 내세운 정책감사 폐지 방침과 모순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국회에서 국회법에 따라 감사를 요구한 것으로, 정책감사 폐지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감사원은 또 "정책 결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어떤 논의를 거쳐 정책이 이뤄졌는지 국민이 궁금해할 부분을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유사 사안에 대한 감사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국회 요구에 따른 감사의 이행 여부는 내부적으로 숙고해 나중에 따로 설명할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국회 요구와 감사원의 재량 사이 조정 방식이 앞으로도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감사원은 이번 결과를 토대로 보건복지부에 의대 정원 조정 추진 시 보다 정교한 의사 인력 수급 추계와 이해관계자 협의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교육부에는 대학별 정원 배정 기준을 명확히 하고, 현장 점검과 자료 제공 절차를 정비해 배정 업무를 철저히 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감사원은 이번에 증원 결정과 정원 배정 과정을 우선 다뤘으며, 정원 배정 이후 추진 상황에 대한 감사 결과는 별도로 내놓을 계획이다. 국회가 후속 감사를 추가로 요구할 경우 여야 간 충돌과 함께 의료정책 전반에 대한 공방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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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윤석열전대통령#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