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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AI로 K-AI 경쟁력 부각…베스핀, 사우디에 전략 제시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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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인공지능 개념이 글로벌 디지털 전환 전략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국의 K-인공지능 모델이 중동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클라우드 관리 전문 기업 베스핀글로벌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국형 AI 적용 사례와 데이터 주권 전략을 공유하며, 양국 간 기술 협력 확대의 신호탄을 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국가가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바탕으로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에너지와 공공 분야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는 중동 국가들의 전략 방향과 맞닿아 업계 관심이 쏠린다.  

 

베스핀글로벌은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정보기술부가 추진하고 글로벌 엑셀러레이터 스파크랩이 운영한 CODE 테크 파운더스 프로그램에서 지난달 24일 사우디 스타트업 20개사 대표단과 단독 간담회를 진행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지난달 4일부터 6주간 진행됐으며, 사우디 스타트업들이 한국의 기술·창업 생태계와 첨단 인프라를 직접 체험하고 국내 대기업, 연구기관, 투자사와 협력 기회를 모색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간담회에는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가 참석해 소버린 인공지능과 K-인공지능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소버린 AI는 특정 글로벌 빅테크의 플랫폼과 모델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국가나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와 자체 구축한 AI 모델, 클라우드 인프라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역량을 확보하는 체계를 뜻한다. 이 개념은 학습 데이터의 국외 유출 우려를 줄이고, 법규와 문화, 언어 특성을 모델 설계 단계에서부터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이 공공, 제조, 서비스 등 각 산업 영역에서 소버린 AI를 선제적으로 적용해 의미 있는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어와 문화 데이터에 특화된 AI 기술력을 결합하는 K-AI 전략이 글로벌 범용 모델과 차별화된 경쟁 구도를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어와 행정 규정, 산업별 도메인 지식을 반영한 모델이 실제 정책 결정과 생산 현장에 직접 연결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구체적 사례로는 국민 참여형 공공 소통 플랫폼 모두의 광장을 소개했다. 이 서비스는 시민 의견을 온라인에서 수집하고 AI 분석을 통해 정책 과정에 반영하는 구조를 구현한 점이 특징이다. 자연어 처리 기술과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결합해 방대한 국민 의견 데이터를 분류·요약하고, 정책 담당자가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이 같은 공공 플랫폼이 한국형 AI가 실제 행정 서비스와 만나는 대표적인 접점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의 AI 도입을 소버린 AI 구축 성공 사례로 제시했다. 원자력 발전소 운영에는 설비 상태 데이터, 안전 관련 로그, 운전 이력 등 민감한 산업 데이터가 대규모로 축적된다. 베스핀글로벌은 이 영역에서 자체 클라우드와 AI 분석 체계를 구축해 발전 효율과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핵심 데이터를 국가 통제 범위 안에 두는 구조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를 두고 국가 기반 산업에서 AI가 효율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강화하면서 데이터 주권까지 유지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질의응답 시간에서 사우디 스타트업들은 자국의 디지털 전환 전략과 연계한 AI 활용 방안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이 대표는 사우디가 국가 차원에서 AI 전환을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는 만큼, 아랍어 언어 특성, 이슬람 문화, 현지 법규와 데이터 환경이 반영된 자체 AI 생태계 구축이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솔루션 도입이 아니라, 국가 데이터 거버넌스와 클라우드 인프라, 모델 학습 체계까지 포괄하는 소버린 AI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그는 또 AI 기술 발전 속도 차이가 국가 간 격차를 키울 수 있지만, 데이터 주권을 확보한 국가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빅테크가 제공하는 범용 대형 언어 모델을 그대로 도입하는 시대는 사실상 끝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자국 데이터 기반으로 최적화된 모델과 서비스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는 한국 클라우드·AI 기업이 사우디 정부와 초기 단계에서 전략 논의를 진행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사우디는 국가 비전 2030을 앞세워 디지털 인프라와 스타트업 육성을 가속하는 가운데, 공공 클라우드와 AI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미 정부 주도 소버린 클라우드와 AI 인프라 논의가 본격화된 상황으로, 중동 지역도 같은 흐름에 올라탄 셈이다.  

 

업계에서는 베스핀글로벌이 한국에서 축적한 공공·에너지·제조 분야 K-AI 구축 경험을 바탕으로, 사우디와의 공동 프로젝트나 현지 합작법인 설립으로 협력을 넓힐 가능성도 거론한다. 다만 데이터 이전 규제와 보안 요건, 현지 규제 체계 정비 속도가 실제 사업 전개를 좌우할 변수로 지목된다.  

 

클라우드와 AI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형 소버린 AI 모델이 중동 시장에 안착한다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방식이 단순 기술 수출을 넘어 데이터 거버넌스와 정책 설계까지 포함하는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논의가 구체적인 공동 인프라 구축과 서비스 상용화로 이어질지 지켜보고 있다.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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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핀글로벌#이한주#사우디아라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