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26만장 공동확보…정부·삼성·현대차·네이버, AI 인프라 승부수
엔비디아 최신 GPU 26만장을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하는 민관 협의체가 가동됐다. 생성형 인공지능 확산으로 초거대 언어모델과 멀티모달 AI 개발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대규모 연산 인프라 확보가 국내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정부와 대형 IT·제조·통신사가 함께 인프라 전략을 짜는 구조가 마련되면서, 그동안 글로벌 빅테크와의 격차 요인으로 지적된 GPU 수급 불확실성을 줄이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의가 단순한 장비 도입이 아니라, 국가 단위 AI 데이터센터 전략과 클라우드·통신·모빌리티를 묶는 연합 구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확보를 추진 중인 엔비디아 GPU 26만장의 구체적 활용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27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GPU 워킹그룹을 발족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네이버 등 주요 기업의 사장급 인사가 참석해 대한민국 AI 인프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동 전략을 논의했다.

이번에 협의 대상으로 올라온 GPU 물량은 총 26만장 규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설명에 따르면 정부가 5만장,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텔레콤이 합산 5만장, 네이버가 6만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구조다. 나머지 물량은 후속 협의와 시장 상황을 반영해 조정하는 방식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 중 상당수는 대규모 언어모델과 자율주행, 통신 네트워크 지능화,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고도화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 GPU는 병렬 연산에 특화된 그래픽처리장치로, 대규모 행렬 연산을 반복 수행해야 하는 딥러닝 학습과 추론에서 사실상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초거대 모델을 학습하려면 수천 장에서 수만 장에 이르는 GPU를 장기간 묶어 사용해야 하기에, 장비 확보 능력이 곧 AI 연구개발 속도와 직결된다. 특히 최신 세대 GPU는 이전 세대 대비 연산 속도와 메모리 대역폭이 대폭 향상돼, 동일 시간 안에 처리 가능한 파라미터 수와 데이터량이 크게 증가하는 특징이 있다. 같은 모델을 학습하더라도 최신 GPU를 활용하면 학습 시간을 줄이거나 모델 크기를 키울 수 있어, 서비스 경쟁력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워킹그룹 발족식에는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 송용호 삼성전자 부사장, 진은숙 현대자동차 부사장, 유경상 SK텔레콤 AI CIC장,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정부와 민간의 첨단·대규모 GPU 확보 및 활용 전략을 공유하고, 국내 AI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협력 모델을 집중 논의했다. 각 사는 클라우드, 반도체, 모빌리티, 통신 등 자사가 보유한 인프라와 서비스 영역에서 GPU를 어떤 방식으로 배치해 시너지를 낼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 자동화, 팹 공정 최적화, 온디바이스 AI 등 제조·디바이스 전반에 AI 활용 폭을 넓히고 있다. 대규모 GPU 인프라는 대형 파라미터를 가진 반도체 설계용 AI 모델과 공정 제어용 예측 모델 학습에 투입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는 자율주행 인지·판단 알고리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모빌리티 서비스에서 AI 모델 복잡도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 차량 내 탑재 전 단계에서 필요한 시뮬레이션과 학습에 고성능 GPU 수요가 많다. SK텔레콤은 통신망 트래픽 최적화, 고객 맞춤형 서비스 추천, 통신사 자체 초거대 언어모델 고도화에 GPU를 집중 활용하고 있고, 네이버는 검색·쇼핑·핀테크·협업툴에 적용할 멀티모달 초거대 모델 개발과 클라우드 고객 대상 AI 인프라 제공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GPU 확보는 공공연구기관과 스타트업, 중견기업을 위한 공유형 AI 인프라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빅테크는 이미 수십만 장 단위 GPU 클러스터를 운영하면서 폐쇄적인 연구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어, 국내 중소 연구자들은 학습 자원 부족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아왔다. 정부가 일정 물량을 직접 확보해 공공 클라우드 형태로 제공할 경우, 데이터·알고리즘 경쟁력은 있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기업과 대학 연구실도 대형 모델 실험에 접근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에서는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가 30만 장 이상 규모의 GPU 클러스터를 연달아 발표하고 있고, 중국 역시 자국산 GPU 육성과 데이터센터 증설로 대응 중이다. 유럽은 전력·온실가스 규제와 데이터 보호 규정을 병행하며 AI 인프라 확대와 규제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한국의 GPU 26만장 공동 확보 전략은 이와 같은 글로벌 흐름 속에서, 제한된 예산과 공급망 제약을 감안해 민관이 자원을 묶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번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글로벌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대응 전략도 논의했다. 구체적으로는 GPU를 단순 연산 장비가 아니라 국가 전략 인프라의 일부로 보고, 데이터센터 입지와 전력 인프라, 냉각 기술, 친환경 에너지 연계, 고속 통신망과의 연동까지 포괄한 종합 로드맵 필요성에 공감했다. 아울러 민간 주도의 기술 혁신이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GPU 구매·운영에 대한 세제 지원, 전력 사용 규제 완화, 데이터 활용 규정 정비 등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향후 실무급 워킹그룹을 중심으로 상시 소통을 이어가고, 필요할 경우 고위급 워킹그룹을 수시 개최해 전략적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워킹그룹에서 나온 현장의 요구는 GPU 구매 방식, 데이터센터 구축 인허가, 연구용 인프라 개방 정책 등에 반영해 구체적 이행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인공지능 윤리 가이드라인과 데이터 보호 규정과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작업도 병행해, 인프라 확충이 규제 리스크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류제명 2차관은 APEC 정상회의 계기 대통령과 엔비디아 젠슨 황 대표, 글로벌 AI 기업 간 면담을 언급하며 GPU 워킹그룹 발족의 의미를 강조했다. 류 차관은 첨단 GPU 대규모 확보와 전략적 활용을 통해 구체적 성과 창출을 지향하는 본격 협력 단계로 나아가겠다고 언급하면서, 정부와 민간이 하나의 팀이 돼 국내 AI 경쟁력 확장과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이번 민관 협력이 국내 AI 인프라 격차를 좁히는 전환점이 될지, 그리고 실제 서비스와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