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노인 주치의제 시범 도입…AI 타고 지역 보건의료 재편 주목
AI 기반 보건의료 혁신과 초고령사회 대비 전략이 맞물리면서 한의약의 지역 보건의료 역할이 재조정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정부가 한의사 노인 주치의 시범사업과 지역 일차의료 강화 과제를 공식 언급하고, 지자체가 이를 반영한 한의약 육성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하면서 향후 5년간 디지털 헬스와 전통의학이 결합된 새로운 서비스 모델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내년에 수립될 제5차 한의약 육성 발전 종합계획이 한의약의 제도권 역할과 ICT 융합 수준을 가를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한의약진흥원은 18일 서울 세텍 컨벤션센터에서 2025년 한의약 육성 지역계획 수립 성과보고회 및 2026년 설명회를 열었다고 19일 밝혔다. 양 기관은 전국 광역·기초지자체, 유관기관 관계자들과 함께 올해 각 지역이 추진한 한의약 육성 계획 수립 성과를 공유하고, 내년도 계획 수립 기준과 지침을 제시했다. 정부 차원의 중장기 계획과 지방계획 간 정합성을 높여 한의약 기반 지역 보건의료 체계를 체계적으로 설계하겠다는 의도다.

행사 1부에서는 2025년 한의약 육성 지역계획 수립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선정된 지자체에 대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과 장관상 시상이 진행됐다. 광역지자체 부문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가 최우수상을, 경상북도가 우수상을 받았다. 기초지자체 부문에서는 경상북도 경산시가 최우수상, 충청남도 서산시와 충청북도 음성군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려상은 경기도 화성시와 전라북도 익산시, 광주광역시 광산구, 경기도 고양시, 충청남도 청양군이 차례로 선정됐다.
시상 이후에는 전북특별자치도와 서산시가 지역 특성에 기반한 한의약 정책 추진 전략을 공유했다. 전북도는 한의약 증진으로 특별한 지역사회 건강 복지 강화와 산업화 기반 구축을 비전으로 내걸고, 전북형 한의약 정책 발굴과 추진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한의약통합건강증진사업, 외국인환자유치마케팅지원, 제약산업 미래인력양성센터 구축사업 등이 소개됐다. 단순 진료 확대를 넘어 의료관광, 제약 인력 양성까지 아우르며 한의약을 지역 바이오·헬스 산업 성장축으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서산시는 지역 주민 한의약 수요도 조사와 스와트 분석을 바탕으로 서산형 한의약 사업을 기획했다. 건강증진팀, 진료팀, 방문보건팀으로 구성된 전담 TF를 운영하며 한방 전문의 초청 건강아카데미, 농한기 한방 중풍 예방교실 등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고령 농촌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만성질환 관리와 중풍 예방을 한의약 기반 주민 건강서비스의 핵심 축으로 설계한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행사 2부에서는 2025년 지자체가 제출한 지역계획 분석 결과가 공유됐다. 동시에 2026년 지역계획 수립을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 작성 지침과 방향성이 제시됐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은 사업 목표와 성과지표를 보다 정량화하고, 한의약과 지역 공공보건, 지역산업, 돌봄체계가 어떻게 연계되는지 명확히 설계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의료인력 불균형이 심화되는 가운데 디지털 기술과 한의약을 결합한 비대면 관리, 데이터 기반 건강 모니터링 등 ICT 융합형 사업 설계 필요성도 언급됐다.
정영훈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은 2026년이 제5차 한의약 육성 발전 종합계획이 새로 수립되는 해라는 점을 강조하며, 중앙정부와 보조를 맞춘 지자체 계획 수립의 중요성을 짚었다. 정 정책관은 AI 기반 보건의료 혁신, 한의사 노인 주치의 시범사업, 지역 일차의료 강화 등을 정부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이러한 과제에서 한의약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의사 노인 주치의 시범사업은 만성질환 다빈도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의사가 지속적으로 건강상태를 관리하는 모델로 설계될 가능성이 커, 기존 서양의학 중심 주치의 모델과 어떻게 보완 관계를 형성할지가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AI 기반 보건의료 혁신 과제와의 연계도 주목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 데이터 표준화와 AI 진단·예측 모델 고도화 정책에 한의약 데이터와 임상정보가 포함될 경우, 맥진, 설진, 한약 처방 패턴 등 비정형 한의약 데이터의 디지털화와 알고리즘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한의약 분야 특성상 자연어 기반 진료기록, 이미지 기반 혀·피부 상태 분석,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맥파 데이터 수집 등 다양한 ICT 융합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데이터 표준 부재, 임상 근거 축적, 개인정보 보호 규정과의 정합성 확보 등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해외에서는 전통의학과 디지털 헬스 결합이 이미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전통의학 진단을 모바일 앱과 웨어러블 기기, 클라우드 기반 건강관리 플랫폼과 연동해 만성질환 관리를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서양의학 중심 보험제도와 규제체계로 인해 한의약의 디지털 헬스 진입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편으로 평가돼 왔다. 이번 종합계획과 지역계획에서 AI, 원격 모니터링, 데이터 연계 범위가 어디까지 설정되느냐에 따라 글로벌 경쟁력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책·재정 측면에서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한의사 노인 주치의 시범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기존 주치의제도와의 역할 조정, 건강보험 수가 구조, 진료 범위·연계체계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AI 활용 진단보조나 예후 예측 서비스가 포함될 때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규제, 데이터 활용 동의 절차, 책임 소재 등 복합적인 규제 이슈가 불가피하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전통의학에 대한 근거기반 평가 기준을 AI와 결합해 더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고, 한의계는 공공보건 영역에서 한의약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송수진 한국한의약진흥원 원장 직무대행은 예산과 인력, 인프라 제약 속에서도 지자체 참여로 사업이 안정적으로 추진됐다고 평가하며, 내년에는 지역계획 수립 과정을 한층 고도화해 지속 가능한 지원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5차 한의약 육성 발전 종합계획과 각 지자체 지역계획이 AI 기반 보건의료 혁신, 노인 주치의제, 지역 일차의료 강화 전략과 맞물려 설계되는 만큼, 향후 한의약의 디지털 전환 속도와 산업적 파급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한의사 노인 주치의제와 한의약 디지털 헬스 모델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안착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