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백악관 코앞서 주방위군 피격”…미국, 군투입·이민 논쟁 재점화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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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26일 오후, 미국(USA) 수도 워싱턴DC(Washington, D.C.) 백악관 인근 도심 교차로에서 순찰 임무 중이던 웨스트버지니아 주방위군 병사 2명이 총격을 받아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추수감사절 연휴를 하루 앞둔 대낮, 미국 권력의 상징 공간 바로 옆에서 군인을 겨냥한 공격이 벌어지면서 워싱턴DC는 물론 미 전역에 불안과 충격이 확산하고 있다.

 

워싱턴DC 경찰청에 따르면 총격은 현지시각 기준 26일 오후 2시 15분께, 백악관에서 북서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교차로에서 일어났다. 제프 캐롤 워싱턴DC 경찰청 부청장은 웨스트버지니아 주방위군 병사들이 도심 순찰 중일 때 용의자가 모퉁이를 돌며 팔을 들어 총을 겨냥해 발포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는 다른 주방위군 병력도 있었고, 즉각 대응 사격에 나서 용의자를 제압했다. 용의자는 체포 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피격당한 병사 2명 역시 인근 병원에서 위중한 상태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백악관 인근서 주방위군 병사 2명이 총격당한 현장 / 연합뉴스
미국 백악관 인근서 주방위군 병사 2명이 총격당한 현장 / 연합뉴스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DC 시장은 이번 사건을 “표적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무차별 공격이 아니라 군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한 범행에 무게를 싣는 평가다. 일부 언론과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가 한때 병사들이 사망했다고 언급하면서 혼선이 빚어졌지만, 이후 상반된 의료 보고를 이유로 정정이 이뤄졌다. 연방수사국(FBI) 캐시 파텔 국장은 사건을 “연방 법률과 법집행관에 대한 공격”으로 분류하고 초기 단계부터 직접 수사를 지휘하겠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이 용의자의 신원과 이력, 미국 입국 경로를 면밀히 추적하는 이유도 이 분류와 맞닿아 있다.

 

총격이 벌어진 장소는 워싱턴 직장인과 관광객이 자주 오가는 백악관 인근 번화가다. 사건 직후 현장에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되고 도로 통제가 이뤄졌으며 경찰 차량과 대원들이 대거 배치돼 도심 일상이 순식간에 멈춰 섰다.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백악관은 잠시 문을 닫고 경계 태세를 한층 강화했다. CNN, AP, BBC 등 주요 국제 매체는 이번 사건을 속보로 전하며 미국 정치와 치안에 드리운 긴장을 집중 조명했다. 일부 매체는 “권력의 심장부가 총성 앞에서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정치권의 반응도 거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플로리다주에 머무르던 중 보고를 받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용의자를 “짐승”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두 주방위군을 쏜 짐승도 중상을 입었다”며 “어떤 경우라도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한 수사와 처벌을 예고하는 동시에, 치안·이민·군 투입을 둘러싼 이미 뜨거운 논쟁을 더욱 자극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도심 군 투입’ 정책과 맞물리며 더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단속과 범죄 척결을 명분으로 지난 8월 워싱턴DC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천명 넘는 주방위군을 투입했다. 수도 자체 병력에 더해 동부 여러 주에서 차출된 병력이 합류했으며, 이번에 피격된 병사들도 그 연장선에서 파견된 웨스트버지니아 주방위군으로 알려졌다. 워싱턴DC 시정부는 연방정부의 일방적 조치가 자치권을 훼손한다고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지방법원은 주방위군 배치를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도 효력 집행은 다음 달 11일까지 보류해 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백악관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용납할 수 없다”며 육군 장관에게 500명 규모의 추가 주방위군 투입을 요청하겠다고 밝히면서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워싱턴DC에 이어 테네시주 멤피스에도 이미 주방위군이 배치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와 일리노이주 시카고 등 다른 도시로의 확대도 검토해 왔다. 이번 총격이 군 투입의 필요성과 효과를 입증하는 근거로 활용될지, 아니면 군인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으로 남을지 평가가 엇갈린다.

 

트럼프 행정부의 ‘군을 앞세운 치안 통제’ 방식에 반대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던 거리 시위 역시 다시 소환되고 있다. “왕은 없다”는 의미를 담은 ‘노킹스(No Kings)’ 구호 아래 열렸던 집회는 대통령 권력에 의존한 군 동원에 대한 근본적 거부를 상징했다. 주방위군이 순찰하던 거리에서 총성이 울렸다는 사실은 치안을 담당하는 군인과 시민 사이에 쌓여 온 불신과 피로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워싱턴DC 밤거리를 가른 노란 경계선은 범죄 현장 차단선일 뿐 아니라, 안전과 공포, 자유와 통제 사이의 불안정한 균열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용의자가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로 알려지면서 사건은 미국 이민 정책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는 2021년 미국에 입국해 워싱턴주에 거주해 왔으나, 정확한 신원과 배경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랜 기간 반 이민 기조를 강화해 온 만큼, 이번 사건이 보다 강경한 이민 규제와 국경 통제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재구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수사 당국은 용의자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며, 범행 동기와 사상적 배경, 혹시 있을지 모를 연계 세력 여부를 추적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가족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두고 수도 중심부에서 벌어진 군인 피격 사건은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총기 폭력, 정치 양극화, 이민 갈등이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은 “백악관 담장 밖에서 벌어진 폭력은 미국 민주주의의 안전지대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BBC는 워싱턴DC의 군 배치를 둘러싼 법적 공방과 이번 사건의 충격이 맞물리며 “수도 치안과 정치가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고 논평했다.

 

앞으로 수사 당국은 사건 관련 증거를 확보하면서 용의자의 이동 동선, 과거 행적과 온라인 활동, 잠재적 공범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정치권에서는 치안 강화를 명분으로 한 추가 군 투입과, 권력 남용과 민군관계 훼손을 우려하는 비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도가 이어질 전망이다. 워싱턴DC 한복판에서 쓰러진 두 병사가 여전히 중태인 가운데, 이번 사건이 미국의 군 역할, 이민 정책, 총기 규제 논의를 어떤 방향으로 재편할지 국제사회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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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대통령#워싱턴dc#웨스트버지니아주방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