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알 권리와 무죄추정 충돌”…법원, 김건희 재판 부분 중계 허용
정권 핵심 인물을 둘러싼 형사 재판이 법정 생중계 논란과 맞물리며 또 한 번 정치권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통일교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건희 여사 재판이 부분 중계 형식으로 진행되면서, 국민의 알 권리와 피고인의 인권 보호를 두고 논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우인성 부장판사는 19일 김 여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속행 공판에서 특검팀이 신청한 재판 중계를 일부 허가했다. 다만 재판부는 서증, 즉 문서증거 조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중계를 허용하며 엄격한 한계를 설정했다.

재판부는 결정 배경에 대해 "중계를 허가한다면 공익적 목적을 위한 국민적 알 권리가 헌법적으로 보장돼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고인의 명예와 무죄추정의 원칙도 보호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계에 의해 전자는 보장되는 반면 후자는 침해된다"고 설명하며 이해 상충 구조를 짚었다.
또한 재판부는 "서증에 산재하는 제3자의 개인정보의 공개에서 비롯될 수 있는 회복될 수 없는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 서증조사 과정에서 피고인의 반론권이 즉시적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종합했다"고 덧붙였다. 서증 조사 과정은 중계 대상에서 제외해 피고인과 관련 제3자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재판부 결정에 따라 김 여사가 피고인석에 앉은 모습은 지난 9월 24일 첫 공판기일 이후 약 두 달 만에 다시 전파를 탔다. 당시에는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입정 장면 촬영까지 허용됐지만, 이날은 법정 중계 시스템을 통한 부분 중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날 김 여사는 검은색 코트와 검정 바지를 착용하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푼 상태에서 흰색 마스크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차림이었다. 그러나 서면증거를 검토하는 서증 조사가 시작되면서, 김 여사가 입정한 지 약 2분 만에 중계는 중단됐다.
오후 재판에서는 김 여사 측이 건강 상태를 이유로 퇴정을 요청하는 장면도 있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오늘 출정할 때도 어지러워서 몇 번 넘어졌다고 한다"며 "지금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돌려보내면 어떻겠나"라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법정 출석 자체를 면하게 하지는 않되, 김 여사가 누워서 대기할 수 있는 장치 여부를 확인한 뒤 휠체어 형태의 들것에 기대 구속 피고인 대기실에서 재판에 임하게 했다. 법정 내 직접 대면 심리와 피고인 건강 문제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셈이다.
이날 공판에서는 정치적 파장을 키울 만한 문자 메시지와 영수증, 통화 녹취 등 구체 자료가 연이어 제시됐다. 특검팀은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열세인 여론조사 결과를 명태균 씨에게 공유했고, 이를 김 여사가 확인한 정황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제시했다. 메시지에는 김 여사가 명 씨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공유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고 적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김 여사가 명태균 씨로부터 관련 보도를 전달받은 뒤 "넵 충성"이라고 답한 대화도 공개됐다. 특검은 이 대화가 당시 여론조사 활용과 정치적 기획 관여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통일교 관련 혐의를 둘러싼 물증도 공개됐다. 특검팀은 2022년 7월 9일께 통일교 관계자가 고가의 그라프 목걸이를 구입한 영수증을 법정에 제출했다. 이어 같은 달 24일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에게 "여사님께 지난번과는 다른 아주 고가의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나"라고 보낸 메시지도 제시했다. 특검은 고가 선물과 교단 지원 청탁 사이에 대가성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와 관련해서는 2010년부터 2011년 사이 김 여사와 증권사 직원들이 나눈 통화 녹취가 공개됐다. 특검팀은 통화 내용이 "피고인도 공범들의 시세조종을 인식하고 가담한 것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통화 녹취에는 매수·매도 시점 논의, 주가 흐름에 대한 언급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는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해 8억1천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별개로 2021년 6월부터 2022년 3월 사이 윤 전 대통령과 공모해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로부터 합계 2억7천만원 상당의 여론조사를 무상 제공받았다는 혐의가 적용돼 있다.
또한 김 여사는 전성배 씨와 공모해 2022년 4월부터 7월까지 통일교 관계자로부터 교단 지원과 관련한 청탁을 받고 고가 목걸이 등 합계 8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도 받는다. 특검은 이러한 혐의들을 통해 정치권력과 종교, 자본 시장이 얽힌 부패 구조를 입증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는 재판 중계와 관련한 논쟁이 더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그간 정치적 재판, 과도한 여론 재판 우려를 제기해온 반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대통령 배우자 관련 의혹에 대한 국민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재판 중계 범위를 둘러싼 법원 판단이 각 진영의 공방 소재로 다시 소환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 여사 재판은 오는 26일 증인신문을 거쳐 다음 달 3일 심리를 종결하는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다. 특검팀은 12월 3일 예정된 피고인 신문에 대해서도 재판 중계를 신청한 상태다. 향후 법원이 피고인 직접 신문 과정까지 중계 범위를 넓힐지, 인권 침해 우려를 들어 선을 그을지에 따라 정치적 파급력도 달라질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향후 재판부가 중계 범위와 방식을 두고 추가 기준을 제시할 경우, 다른 주요 정치 사건 재판에도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는 재판 중계의 범위와 피고인 인권 보호 문제를 놓고 사법제도 개선 여부를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