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 출국 망상”…이종섭, 해병 특검 첫 소환에 혐의 전면 부인
채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수사외압 및 은폐 의혹이 다시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2025년 9월 17일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서 당시 국방부 수장이었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처음으로 소환해 장시간 조사했다. ‘호주 도피성 출국’ 의혹으로 정치권이 격렬히 대립한 가운데,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된 이 전 장관은 출석 전부터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으며, 조사 종료 뒤에도 모든 의혹을 일축했다.
이종섭 전 장관은 이날 오전 9시 57분께 특검팀에 출석해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귀가했다. 그는 취재진을 향해 “할 이야기는 다 했다”며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고 밝혔다. ‘범인 도피 없었고 출국금지 해제도 몰랐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도피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반문했고, 변호인 역시 “(도피 의혹은) 망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 항명죄 수사 지시를 내렸느냐’는 질문에는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특검팀은 이날 임명, 출국, 귀국, 사임 등 이 전 장관의 주호주대사 부임 전후 전 과정을 두고 범인도피 관련 사실관계를 집중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3년 7월 채 상병 순직 당시 국방부를 이끌었던 그는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사를 받았고, 출국금지 조처가 내려졌으나 이듬해 3월 4일 돌연 호주대사로 임명된 뒤 나흘 만에 출국금지가 해제된 사실이 확인됐다. 여론의 뭇매 속에 11일 만에 입국해 대사직을 사임했다.
이종섭 전 장관에 대한 첫 소환 이후, 특검은 오는 23일 그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추가 조사할 계획이다. 변호인 측은 “예정된 일정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이 전 장관 소환을 두고 거센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정치적 표적 수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야권은 “권력형 외압의 진상”을 밝힐 중요한 계기라며 특검의 신속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이 전 장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통화 이후 해병대 수사단 초동 조사 결재 번복 사실이 드러나면서 ‘VIP 격노설’의 열쇠를 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특검팀은 최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을 세 차례 소환해 대통령실과의 논의 여부를 집중 조사했다. 또한, 이 전 장관이 박정훈 대령이 방송에서 수사외압을 폭로한 다음날인 2023년 8월 12일 윤 전 대통령과 2차례, 2023년 8월 28일에는 ‘VIP 격노설’이 불거진 다음날 하루 사이 9차례, 총 47분간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특검팀은 “이 같은 통화 기록 등 일련의 정황이 외압 의혹 규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종섭 전 장관 조사와 특검의 향후 행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직접 겨누는 단초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검팀은 이번 참고인 조사를 시작으로, 건별 피의자 신문 및 관련 증거 확보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특검은 23일 예정된 이종섭 전 장관 피의자 조사를 포함해, 수사외압 및 은폐 의혹 전반에 대한 본격 수사로 나아갈 계획이다. 정치권은 특검 소환을 놓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