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아래 깊어지는 사색”…월출산 품은 영암의 시간과 고요
요즘 영암군을 걷는 이들이 부쩍 느려졌다. 바람 한 점에도 흐름이 달라지는 이곳의 시간은 가끔, 오히려 멈춘 듯 흐른다. 역사의 흔적과 자연이 오래도록 맞닿는 산 아래에서, 우리는 익숙하지만 낯선 사색의 순간을 맞이한다.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9월 한가운데, 31도의 기온과 65%의 습도 탓에 아직 여름의 기운이 진하게 남았지만, 남남동풍이 부는 오후엔 흐린 하늘과 미지근한 바람이 소리 없이 계절의 전환을 알린다. 그래도 마을의 하루는 산뜻한 여유로 이어진다.

영암에는 왕인 박사의 자취와 함께, 천년을 버텨낸 도갑사가 있다. 군서면의 왕인박사유적지 산책로를 걸으며 백제 시대의 학문과 삶을 짐작하고, 넓게 이어진 고요 속에서 ‘시간’ 그 자체를 만난다. “왕인묘 앞 연못까지 걷다 보니, 머리가 맑아졌다”고 말하는 방문객의 소감처럼, 자연과 역사가 곁을 내어주는 순간이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지역 문화 활용형 관광지 방문이 늘면서, 사찰과 산길, 역사유적 탐방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한국관광공사 자료로 이어진다. 특히, 도갑사는 해탈문과 마애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등 보물과 국보로 곳곳이 가득하다. 실제로 기자가 도갑사 경내를 걸어보니, 천년 고찰의 담담한 풍경에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경험으로 채우는 스테이’라 부른다. 트렌드 분석가 이현지 씨는 “과거의 흔적이나 자연의 조용함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원래의 속도를 되찾는다. 영암처럼 거대한 산과 고찰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일상의 번잡함이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고 표현했다.
반면, 삼호읍 영암국제카트경기장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기다린다. 스릴 가득한 주행을 즐기려는 가족과 친구들이 트랙에 모여든다. 평일에도 “직접 운전대를 잡아 속도를 즐기는 건 일상 스트레스를 순간에 날려버리는 기분”이라는 방문객의 고백이 잦다. 커뮤니티에는 “주행 후 한참이 지나도 손끝이 떨린다”는 후기도 남겨진다.
그래서 영암에서의 하루는 두 얼굴을 지닌다. 한쪽에서는 고요와 사유의 시간이 깊어지고, 다른 쪽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에너지가 살아난다. 각각의 장소와 체험은 일상에서 잠시 멈춤과 질주 사이, 나만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방법일지 모른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삶의 속도를 조율하는 법을 배워간다. 월출산 아래 ‘사색’과 ‘스피드’가 어우러진 영암의 하루—이 변화는 지금,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