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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맞는 베돌리주맙 피하주사"…IBD 환자 치료부담 줄인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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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성 장질환 치료 패러다임이 병원 정맥주사 중심에서 가정용 피하 자가주사로 옮겨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연구진이 장기간 정맥주사로 생물학제제 치료를 받던 환자들을 피하주사 제형으로 전환해 24주간 추적한 결과, 안전성과 효능이 유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난치성·재발성 특성 탓에 평생 주기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병원 방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근 도입된 베돌리주맙 피하주사에 대한 국내 실제 진료 환경 데이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염증성 장질환 치료 전략 재편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윤혁·전유경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황성욱 서울아산병원 교수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2023년부터 2024년까지 두 병원에서 염증성 장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10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베돌리주맙 정맥주사에서 피하주사 제형으로 전환하는 전향적 관찰 연구를 진행했다. 대상자는 기존에 정맥주사 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관해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환자들로, 피하주사로 전환한 후 24주 동안 2주 간격으로 약물을 투여받았다.

염증성 장질환은 장에 만성 염증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질환군으로, 대표적으로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이 여기에 포함된다. 혈변, 설사, 복통, 체중 감소 등 증상이 동반되고 재발과 관해가 반복되는 특성 때문에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으로 분류된다. 치료 목표는 장점막 염증을 최대한 억제해 관해 상태를 유지하고, 환자가 일상생활을 가능한 한 정상에 가깝게 유지하도록 하는 데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중등도 이상 환자에서는 생물학제제가 핵심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생물학제제는 특정 염증 신호를 차단하는 단백질 기반 약제로, 통상 정맥주사 형태로 투여된다. 문제는 이 정맥주사 투여 방식이 1개월에서 2개월 간격으로 반복되며, 일부 환자의 경우 수년에서 평생에 걸쳐 병원을 정기 방문해야 한다는 점이다. 직장 생활이나 학업과 병행하기 어려운 구조일 뿐 아니라, 내원 일정이 미뤄져 투약 간격이 늘어나면 염증이 재활성화돼 증상이 악화될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일부 생물학제제는 가정에서 환자 스스로 맞을 수 있는 피하주사 제형으로 개발됐다. 피하주사는 피부 바로 아래 지방층에 약물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펜 타입 또는 프리필드시린지 형태로 제공돼 교육만 받으면 환자가 직접 투약할 수 있다. 최근 염증성 장질환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장 선택적 항염증제 베돌리주맙에서도 피하주사 제형이 도입되면서 치료 옵션이 넓어졌다. 다만 국내에서는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베돌리주맙 피하주사 전환 데이터가 부족해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베돌리주맙 정맥주사 치료 중 관해 상태에 도달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피하주사 전환 후 24주간의 지속 사용 여부, 국소 및 전신 부작용, 치료 중단 요인 등을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전체 대상자의 71.3퍼센트가 24주 시점까지 피하주사 치료를 유지해, 장기간 사용에도 치료 지속성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피하주사로 전환하더라도 상당수 환자에서 정맥주사와 유사한 수준의 질병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큰 문제는 관찰되지 않았다. 약 24퍼센트의 환자가 주사 부위 가려움, 통증 등 국소 반응을 호소했지만 대부분 일시적이고 관리가 가능한 경증 수준이었다. 전신적인 부작용 발생률은 약 2퍼센트로 매우 낮게 나타나, 자가 투여 형태의 피하주사로 전환하더라도 전반적인 안전성은 유지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입원 치료나 긴급한 약물 교체가 필요한 중증 이상반응은 드물어, 일상 환경에서의 사용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다만 모든 환자가 피하주사 전환에 동일하게 적합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피하주사로 전환하는 시점에 스테로이드를 병용하고 있던 환자군, 그리고 정맥주사 단계에서부터 약효가 충분치 않아 표준 투여 간격보다 짧은 4주 간격으로 주사를 맞던 궤양성 대장염 환자군에서는 피하주사를 중단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는 질병 활성도가 여전히 높거나 치료 반응이 불안정한 환자에서는 피하주사 전환 시 더 세심한 평가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국제적으로는 염증성 장질환 치료에서 정맥주사와 피하주사 제형 간 전환 전략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고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베돌리주맙을 포함한 여러 생물학제제에서 자가주사 모델이 확산되는 추세이며, 환자 편의성과 의료 자원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방향으로 치료 모델이 설계되는 분위기다. 국내 연구진이 실제 진료 환경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국제학술지 장과 간 저널에 게재한 것은, 한국 환자군 특성을 반영한 근거를 글로벌 논의에 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유경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 치료 전략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 교수는 생물학제제 도입으로 예전보다 관해 유도와 유지율은 크게 개선됐지만, 잦은 병원 방문이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의료 시스템에도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에서 정맥주사를 통해 염증을 충분히 안정화시킨 뒤, 관해가 확인된 환자에게는 피하주사로 전환해 가정에서 스스로 투약하도록 하는 단계적 모델이 환자 삶의 질과 치료 지속성을 함께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국내 염증성 장질환 환자에 대한 베돌리주맙 피하주사 사용 확대의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스테로이드 병용 환자나 고위험군에서의 적응 기준, 장기 추적 시 효과 유지 여부 등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보험 급여 기준과 투여 환경에 대한 정책적 논의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염증성 장질환은 발병 연령이 20대, 30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치료 전략이 곧 수십 년간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이번 연구가 제시한 피하주사 전환 모델이 실제 진료 지침과 보험 제도에 어느 정도 반영될지에 따라 환자들의 치료 경험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의료계와 정책 당국, 제약업계가 치료 편의성과 안전성, 재정 지속 가능성 간 균형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과 데이터가 실제 시장에 안착해 염증성 장질환 관리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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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돌리주맙#염증성장질환#분당서울대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