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OST가 AI시대 콘텐츠”…엔씨, 아이온2 사운드로 글로벌 공략
게임 사운드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한 가운데, 국내 게임사가 OST를 앞세운 IP 확장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단순 배경음이었던 게임 음악이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이용자에게 동시 유통되면서, 게임 기획 단계부터 음악을 핵심 고객 경험 자산으로 설계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는 이번 행보를 국내 게임사가 음악 제작과 유통까지 아우르는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전환하는 분기점 가운데 하나로 본다.
엔씨소프트는 19일 신작 아이온2 출시를 기념해 공식 OST 앨범 The Echoes of Eternity를 발매했다고 밝혔다. 이 앨범에는 총 70곡이 수록됐으며, 게임 속 주요 지역과 전투, 핵심 사건을 중심으로 한 음악적 서사를 3개 챕터 구조로 정리했다. 기존 일부 메인 테마 위주 수록 방식 대신, 플레이 전반의 정서 흐름을 그대로 옮긴 장편 OST 구성을 택해 몰입형 게임 경험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타이틀곡 영원의 탑, 다시 만난 세계는 할리우드 대형 프로젝트에서 활동해 온 작곡가 사이먼프랭글렌과 원작 아이온의 상징적 음악을 만든 양방언이 공동으로 작업했다. 프랭글렌은 영화 아바타 시리즈 음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작곡가로, 대규모 오케스트레이션과 공간감 있는 사운드 디자인에 강점을 가진 인물이다. 여기에 원작 세계관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양방언이 합류하면서, 기존 팬층에게 익숙한 테마와 새로운 서사 구조를 동시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곡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녹음은 영국 런던의 에어 스튜디오에서 진행됐고, 연주는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에어 스튜디오는 영화 음악과 AAA급 게임 음악 작업이 집중되는 글로벌 레코딩 인프라로, 대규모 스트링과 브라스 사운드를 자연스럽게 포착하는 음향 설계로 잘 알려져 있다. 고해상도 게임 오디오 환경에 최적화된 녹음 환경을 택함으로써, 콘솔과 PC, 모바일 등 다양한 기기에서 균일한 사운드 품질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담긴 선택으로 해석된다.
게임 음악 제작 관점에서 보면, 이번 OST는 단일 메인 테마 중심이 아니라 상황별 인터랙티브 사운드 구성을 전제로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투, 탐험, 컷신 등 플레이 상황에 따라 곡의 템포와 악기 구성이 유기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동기화 포인트를 촘촘히 설계하는 방식이다. 최근 게임 엔진과 미들웨어가 실시간 오디오 믹싱과 다이내믹 루프를 지원하면서, OST는 음원 유통용 정적 트랙과 게임 내 동적 사운드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제작되는 추세다.
시장 측면에서는 OST의 멀티 플랫폼 동시 공개가 눈에 띈다. 엔씨소프트는 이번 앨범을 멜론과 지니 등 국내 음원 서비스뿐 아니라 스포티파이와 유튜브 뮤직 등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도 동시에 공개했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는 잠재 이용자도 음악을 통해 IP를 먼저 접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글로벌에서는 게임을 접점으로 한 음악 소비가 늘어나면서, OST가 별도 수익원이자 마케팅 채널로 기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엔씨사운드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전체 수록곡을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이 제공되며, 타이틀곡 영원의 탑 다시 만난 세계의 오케스트라 연주 현장을 담은 공식 뮤직비디오도 공개됐다. 영상과 실연 장면을 결합한 형식은 음원 스트리밍뿐 아니라 영상 플랫폼에서도 체류 시간을 늘려, 브랜드 노출과 팬 커뮤니티 형성에 유리한 구조를 만든다. 특히 유튜브 기반의 글로벌 접근성을 활용하면,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장기 트래픽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 출시 이후의 IP 수명 연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는 이미 OST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일부 대형 게임사는 오케스트라 투어 콘서트와 바이닐 한정판 발매 등 음악 중심의 2차 상품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면 콘서트와 전시형 이벤트를 통해 게임 사운드를 단독 콘텐츠로 소비하는 시도가 늘어나는 가운데,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유명 작곡가를 전면에 내세운 엔씨소프트의 행보는 향후 실연 공연과 콜라보레이션 사업으로 확장될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책과 규제 측면에서 보면, 디지털 음원 유통과 영상 콘텐츠 제작은 별도의 심의 절차보다는 저작권과 라이선스 관리가 핵심 변수다. 글로벌 작곡가와 오케스트라, 해외 스튜디오가 참여한 프로젝트일수록 판권 구조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게임사 내부에서 음악 IP를 통합 관리하는 조직과 시스템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인게임 사운드와 외부 음원 유통, 영상 사용 범위가 서로 엮여 있는 만큼, 계약 단계에서부터 다국가 서비스를 염두에 둔 권리 설계가 요구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고품질 OST가 단기적인 홍보 수단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IP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유저 충성도를 높이는 자산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작 게임이 출시 직후 흥행 변수에 크게 좌우되는 상황에서, 음악과 스토리를 결합한 서사 중심 전략은 이용자 이탈을 늦추는 수단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 산업계는 아이온2 OST처럼 글로벌 스튜디오와 협업한 음악 프로젝트가 실제 이용자 확보와 매출에 어느 정도 기여할지, 그리고 이후 공연과 2차 저작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