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마을을 걷다”…가을비 속 영주, 고요함이 머무는 시간
요즘 흐리고 비가 내리는 가을날, 소백산 기슭의 영주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이전에는 선비의 도시라 멀게 느꼈지만, 지금은 온기와 고요함을 찾아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일상이 되고 있다.
17일, 영주는 비에 젖은 가을 풍경이 번진다. 온도는 21.6도에 습도 99%. 강수확률 60%로 우산이 필수지만, 바람은 약하게 스친다. 이런 날씨엔 더 조용하고 깊이 있게 영주를 느낄 수 있다. 선비의 정신이 깃든 순흥면 선비촌에선 옛 학자들의 흔적이 살아 숨 쉰다. 고즈넉한 한옥을 따라 걸으며 돌담길과 오래된 담쟁이, 솔향기 가득한 산책로가 방문객을 따스하게 맞는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코로나 이후 근거리 힐링 여행지가 각광받으면서, 경주·안동 등 전통문화 여행지 방문객이 매년 10% 넘게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주는 역사와 자연이 촘촘히 응답하는 곳으로, 조용한 사색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꾸준히 찾는다.
고요한 사찰 희방사까지 길을 옮기면, 빗방울 소리와 절집의 기도가 한데 섞여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신라시대 유서 깊은 절집을 품은 산자락, 그리고 웅장한 희방폭포가 여행자들의 여정을 부드럽게 적셔준다. 월인석보 책판이 전하는 한글의 숨결, 6.25 전쟁의 상흔을 딛고 중건된 절의 시간도 이곳의 정중한 분위기에 녹아 있다.
삼판서고택에서는 깊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면, 번잡함과 잠시 멀어진다. 수백 년을 견딘 기와와 마루, 판서 집안의 이야기가 쌓인 뜨락에서 여행자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조용해서 좋았다”, “비 내리는 날 한옥마을이 더 운치 있다”는 커뮤니티의 감상처럼, 누구든 일상을 비워내고 자신만의 속도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관광 칼럼니스트 이효정씨는 “영주는 혼자이든, 가족이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곳”이라며 “균형 잡힌 역사·자연 체험이 도심의 피로를 씻어준다”고 전했다. 그만큼, 영주의 가을 여행은 각자의 감정과 리듬을 존중하는 시간에 가깝다.
촉촉한 가을비와 고요한 움직임, 사색의 시간. 영주는 트렌드가 아니라 삶의 결을 세밀하게 바꾸는 여행의 기호다. 작고 사소한 발걸음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의 일상도 한층 차분하게 물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