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 AI데이터센터 동참”…한국 UAE 손잡고 중동 공략
아랍에미리트의 초대형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계획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본격 동참하며 IT·바이오 융합 협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30조원 규모로 알려진 UAE AI데이터센터 구축 사업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매개로, 양국은 자율주행, 의료 AI, AI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공동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구조를 짜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중동발 디지털 인프라 패권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UAE 국빈방문 계기에 19일 UAE 현지에서 한 UAE 진출기업 간담회, 양국 기업 간 계약 및 업무협약 체결식, 카즈나 데이터센터 방문 등을 진행하며 경제 기술 협력 기회를 넓혔다고 밝혔다. 행사는 AI와 클라우드, 반도체, 헬스케어 등 디지털 전환 핵심 분야를 포괄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오전 한 UAE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뒤 UAE 국영 AI 기업 G42의 펑샤오 최고경영자와 별도 면담을 가졌다. G42는 UAE의 AI 국가 전략을 주도하는 핵심 기업으로, 초기 투자만 30조원에 달하는 UAE AI데이터센터 구축 계획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주관사다. 스타게이트는 대규모 AI 연산 인프라를 집중 구축해 중동 각국의 초거대 AI 수요를 수용하는 일종의 메가 데이터센터 허브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배 부총리는 면담에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대한 한 UAE 공동 협력 방안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한국의 AI 기술력과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 AI반도체 생태계를 스타게이트 인프라에 접목하는 방향이 주요 의제로 오르면서, 연구개발 협력, AI 전문 인력 교류, AI 거버넌스 공동 논의 등 다층적 파트너십 추진에 뜻을 모았다. 과기정통부는 향후 UAE 협력 TF와 한 UAE 국장급 협의체를 운영해 산학연 전반의 프로젝트 발굴과 정책 협의를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기업의 현지 진출 애로 해소에도 공을 들였다. 배 부총리는 UAE IT지원센터를 찾아 8개 UAE 진출 국내 AI 디지털 기업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참석 기업들은 현지 정부 주도의 AI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 발주 구조, 파트너 매칭 과정의 정보 비대칭, 규제와 인증 절차에서 겪는 현실적 어려움 등을 공유했다. 배 부총리는 규제 정보 제공과 프로젝트 정보 연계, 공공 조달 참여 기회 확대 등을 포함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양국 기업 간 구체적 사업 계약과 업무협약도 연달아 나왔다. 먼저 자율주행 전문기업 오토노머스A2Z는 UAE 국영 기업 SPACE42와 공동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400만 달러 규모의 공동 출자를 통해 한 UAE 합작법인을 설립해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와 실증 사업을 추진한다. 이어 아부다비 지역을 중심으로 800만 달러 규모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솔루션을 현지 대중교통과 물류, 스마트시티 인프라에 연계해 상용 운행까지 염두에 둔 구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AI 분야에서는 루닛이 두바이 소재 의료 과학기술 솔루션 기업 ARJ 그룹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루닛의 영상 진단 AI와 암 검진 보조 알고리즘 등 의과학 특화 AI를 UAE 내 병원과 공공의료기관에 적용하는 방안을 공동 검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측은 의료 데이터 규제와 보험 청구 체계,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인허가 절차 등 제도적 정보도 교류해, 루닛의 기술을 현지 의료체계에 적합한 형태로 커스터마이징하는 전략을 모색한다.
AI반도체 협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배 부총리는 퓨리오사AI, 리벨리온, 하이퍼엑셀 등 국내 AI반도체 기업들과 함께 UAE 최대 AI 컴퓨팅 인프라 사업자인 카즈나 데이터센터를 방문했다. 카즈나는 G42의 AI 인프라 자회사로 UAE 전체 데이터센터 용량의 70퍼센트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서도 핵심 인프라 제공자로 참여하고 있다.
카즈나는 스타게이트의 인프라 구조와 서비스 목표, 중장기 확장 계획을 한국 측과 공유했다. 여기에 한국 정부는 AI반도체 육성 정책과 함께 각 기업의 제품 포트폴리오, LG AI연구원, SK텔레콤 등 국내 대기업과의 상용화 사례를 소개했다. 특히 전력 효율을 대폭 개선한 국산 AI 전용 칩을 활용해 데이터센터의 운영비용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구조가 논의됐다. 양측은 고효율 칩 도입을 위한 파일럿 실증, 공동 최적화 연구, 소프트웨어 생태계 연계를 포함한 세부 협력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력 효율성은 초대형 AI데이터센터 경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초거대 언어모델과 멀티모달 AI 수요가 폭증하면서, 데이터센터는 이전 세대 대비 수배 이상의 연산과 전력을 요구한다.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들은 저전력 GPU와 AI 특화 가속기를 도입해 비용과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데 주력해 왔다. 이번 한국 UAE 협력에서 국산 AI반도체가 전면에 오른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중동은 에너지 기반 인프라와 공격적 디지털 투자 전략을 바탕으로 글로벌 AI 클라우드 허브를 노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클라우드·AI 기업들이 잇달아 현지 데이터센터와 리전 구축에 나선 가운데, UAE는 국가 차원의 AI 인재 육성과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 정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첨단 반도체와 AI 소프트웨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패키지로 수출할 수 있는 전략 시장으로 평가된다.
한편 AI 의료기기와 자율주행 시스템은 각국의 규제와 인증 체계에 따라 사업 속도가 크게 좌우된다. UAE는 의료기기와 자율주행 관련 규제를 정비하며 국제 기준에 근접한 인허가 환경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한국 기업이 초기 사례를 확보할 경우 이 경험이 사우디, 카타르 등 인접국 진출로 확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배 부총리는 AI 등 첨단 분야에서 한국과 UAE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동반자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국 정부와 기업이 기술과 산업 협력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할수록, 중동 디지털 전환 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산업계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자율주행, 의료AI 협력이 실제 매출과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