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화장품, 중동 공략 가속…식약처·UAE 규제 동맹
K바이오헬스와 K뷰티가 중동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우리 규제 당국과 아랍에미리트 규제 기관이 직접 맞물리는 협력 채널이 생기면서 의약품과 의료기기, 화장품의 허가와 수출 과정에서 병목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공지능 기반 평가, 디지털 전환, 첨단바이오 규제과학 등 신기술 영역까지 포괄하는 협력 구조여서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 전략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9일 아랍에미리트 의료제품 규제기관인 EDE와 바이오헬스 분야 포괄적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서명은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이 임석한 정상회담 계기 행사에서 진행됐다. 이번 합의는 이달 초 오유경 식약처장과 사이드 빈 무바락 알 하제리 EDE 이사회 의장 간 양자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제도화한 후속 조치에 해당한다.

양해각서에 따라 양국 규제 당국은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포괄적이면서도 전략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대상 품목은 의약품과 의료기기, 화장품 등으로, 규제 심사와 허가, 사후관리 전주기에 걸친 상호 협력 확대가 목표다. 업계에서는 향후 상호 이해도 제고를 통해 허가 심사 기간 단축과 요구자료 예측 가능성 제고 등 실질적 규제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구체적으로는 공동 세미나와 워크숍, 교육 프로그램을 정례화하고 규제정보와 과학 데이터, 모범사례를 상호 공유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각국이 보유한 평가 기준과 심사 경험, 위해성 관리 사례 등을 교환해 규제과학 수준을 함께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 교류도 장려해 의약품 비임상·임상 데이터 해석, 의료기기 성능 평가, 화장품 안전성 검토 등 개별 분야별 실무 지식을 직접 교환하는 구조도 마련할 방침이다.
협력의 핵심 축으로는 규제혁신과 디지털 전환, 안전성 강화를 위한 공동연구가 지목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허가 심사 지원, 전자 제출자료 시스템, 리얼월드데이터 기반 사후 모니터링 등 최근 규제 환경의 디지털화 흐름을 공동으로 검토하고, 신기술에 대한 규제 모델을 함께 설계하는 방향이 논의될 수 있다. 동시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공동 협력 프로젝트를 발굴해 실제 연구개발과 규제정책이 연계되는 협업 구조도 구축할 계획이다.
양해각서 이행을 위해서는 공동 워킹그룹과 고위급·기관장 회의를 포함하는 다층적 협력 채널이 조성된다. 워킹그룹은 실무 차원에서 세부 협력 과제를 발굴·관리하고, 정기 고위급 회의는 양국 정책 방향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규제 당국 간 직접 라인이 생기면 허가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석 차이와 예기치 못한 수출 규제 이슈에 대해 신속히 협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도 리스크 관리 수단이 추가되는 셈이다.
특히 양측은 인공지능과 바이오 등 혁신 기술, 그리고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화장품 분야에서 협력을 집중 강화하기로 했다. 이는 양국 정상이 합의한 첨단 산업 분야 전략적 협력을 규제·산업 차원에서 구체화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인공지능 기반 진단보조 솔루션, 바이오의약품,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첨단 의료제품에 대한 허가 기준과 평가 방법을 함께 논의하면, 한국 기업이 개발한 고부가가치 제품의 UAE 및 중동 진출 시 규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UAE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큰 화장품 수출 허브로 꼽힌다. 최근 몇 년 사이 K뷰티 열풍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한국 화장품의 UAE 수출액도 지난 3년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규제 협력 강화는 성분 규제 기준, 표시·광고 가이드라인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통관과 마케팅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UAE를 거점으로 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까지 수출 확대 여지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유경 처장은 UAE EDE의 Fatima Al Kaabi 총괄책임자와 만나 인공지능과 첨단 바이오 분야에 대한 양국의 관심을 공유했다. 특히 바이오헬스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협력과 함께, UAE 내에서 한국 의료제품의 신속 허가를 어떻게 구현할지 세부 방안을 논의했다. 사전상담 절차 체계화, 공통 심사자료 양식 도입, 동시 심사 모델 검토 등 다양한 협력 시나리오가 검토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어 오 처장은 아부다비 줄기세포센터 ADSCC를 방문해 옌드리 벤투라 최고경영자를 만나 양국의 첨단바이오 연구기술 분야 전망과 성과를 공유했다. 세포유전자치료제 연구개발 현장을 직접 참관하면서 임상용 세포치료제 제조 능력, 품질관리 체계, 임상시험 인프라 등 UAE의 현황을 자세히 살폈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세포·유전자 기반 치료제 개발 경험과 결합할 경우 공동 임상이나 기술이전, 위탁생산 등 다양한 협력 모델로 확장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식약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UAE 지사도 방문해 의료제품과 화장품의 중동 수출 현황과 한국 기업들이 겪는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현지 규제 요구사항의 빈번한 개정, 언어·문화 차이에 따른 서류 작성 부담, 사후관리 규정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이 대표적인 어려움으로 꼽힌다. 양 기관은 앞으로 의료제품과 화장품 수출 과정에서 규제 이슈가 발생하면 긴밀히 협력해 신속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양해각서를 통해 한국 규제 당국이 바이오헬스 규제시스템의 국제 조화와 수출 지원 기능을 동시에 강화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중동 시장이 고부가가치 의료서비스와 첨단 의약품 수요를 빠르게 확대하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규제 협력은 단순 수출을 넘어 연구개발과 임상, 생산까지 아우르는 가치사슬 협력으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번 협력으로 바이오헬스 규제시스템과 글로벌 진출 지원 시스템을 함께 혁신하고 국제적 위상을 한층 높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우수한 한국 의료제품과 화장품이 해외 시장에서 더욱 활발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 수단을 다각도로 확충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계는 양해각서가 실제 인허가 절차와 시장 진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중동을 발판으로 한 글로벌 확장 전략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