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3천500억달러 투자안 팽팽히 맞서”…김정관·여한구, 관세 협상 돌파구 모색
한미 관세 협상이 대규모 대미 투자 방안을 두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긴급 방미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의 잇따른 협상 라인 투입으로, 대화의 동력이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김정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등과 협상을 벌였으나 뚜렷한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곧이어 15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관세 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이는 양국이 3천500억달러(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방식과 이행 조건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우선 협상 결렬이라는 최악의 국면은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30일, 미국의 대(對)한국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이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나서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구체적 이행방식을 두고 한국과 미국의 견해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유사하게 투자액 대부분을 직접 현금 이동이 있는 지분투자로 하며, 단기간 내 미국 특수목적법인(SPC)에 입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투자수익 배분 방식도 원금 회수 전·후를 달리해, 한국 측이 극도로 불리한 조건이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투자 중 지분투자를 5% 이내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신용보증 등 현금 유출 없는 방식으로 운용하길 희망하며 맞서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대규모 자본 유출과 외환시장 충격, 막대한 국가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3천500억달러는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하는 데다, 만약 미국안대로 3년에 걸쳐 투자하면 연간 국가 예산의 20%에 달하는 현금이 유출된다. 외화보유액(4천163억달러) 대다수를 소진하게 되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거론된다. 이에 따라 관세가 25%로 다시 오르더라도 미국식 투자안을 수용하지 않는 방향에 무게가 실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강경대응 기류 속에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 역시 한국이 일본식 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관세 재부과를 거론하며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다만 최근 김정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의 만남 이후 대화 결렬 선언이 아닌 여한구 본부장의 방미가 바로 이어졌고,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의 대미투자 중요성에 주목하는 메시지를 내면서 협의의 불씨가 꺼지지는 않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미국 역시 미중 경쟁과 첨단산업 재건 필요성 등으로 한국을 대상으로 무리한 요구를 지속하는 데 부담을 안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관세 인하 시점이 늦춰지거나, 협상 경과에 따라 상호관세가 다시 인상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정부는 대규모 투자와 대출 비중을 최소화하고, 단계적 투자 집행과 한미 통화스와프 등 외환시장 충격 최소화 방안에 힘을 쏟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현명한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치권과 정부는 거센 파장을 감안해, 본격적인 투자 방식 조율과 외환시장 안정 확보를 위한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