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규제 글로벌 최소 수준으로 재설계"…이재명 정부, 데이터 개방·자율주행 규제 손본다
AI 규제를 둘러싼 산업계 요구와 정부의 대응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운 인공지능 대전환 구상이 속도를 내면서, 규제 체계를 어디까지 풀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정치·정책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이다.
국무조정실은 27일 이재명 정부의 인공지능 정책 기조에 맞춰 AI 분야 규제 합리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부는 민간과 공공 영역의 데이터를 인공지능 학습용으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율주행차, 로봇, 데이터센터 등 주요 신산업 분야 규제를 재정비해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나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정부는 이번 로드맵을 통해 국내 AI 규제 수준을 글로벌 최소 수준에 맞춰 재설계하겠다고 강조했다. 규제 방식을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법률과 정책에 명시된 금지사항 외에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을 가속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AI 협회와 기업, 연구기관, 전문가와의 협의와 자체 조사를 거쳐 기술개발, 서비스활용, 인프라, 신뢰 및 안전 규범 등 4개 분야에서 67개 과제를 선정했다.
기술개발 분야에서는 AI 학습용 데이터 활용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저작권법상 타인의 저작물을 인공지능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공정이용 범위를 구체화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다양한 공공 데이터를 AI 학습 목적에 맞게 개방해 데이터 접근성을 대폭 넓히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또한 AI 기반 창작물에 대해 특허권과 디자인권 등 산업재산권 등록이 가능하도록 심사 기준을 정비한다. 산업·제조 데이터는 표준화 작업을 거쳐 공유 플랫폼을 구축하고, 개인정보 가명 처리 절차도 간소화해 연구·산업 활용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서비스 활용 측면에서는 공공행정 혁신이 전면에 배치됐다. 정부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세금 컨설턴트, 소상공인 도우미 서비스 등을 개발해 행정서비스 효율을 높이고 국민 편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세무 상담, 경영 지원 등 기존에 인력 중심으로 이뤄지던 업무에 AI를 적극 투입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신산업 핵심 분야인 자율주행과 로봇에 대한 규제 완화 계획도 포함됐다. 정부는 자동차 자율주행 시범지구를 기존 일부 구역에서 도시 단위로 확대 지정해 실증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로봇 산업과 관련해서도 인허가 심사 평가항목을 줄이고 심사 기간을 단축하는 등 관련 규제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해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인프라 확충을 위한 규제 손질도 추진된다. 데이터센터 건립 과정에서 요구돼 온 미술작품과 승강기 설치 의무를 완화해 적용하고, 반도체 공장에 적용되는 소방 관련 규제 또한 합리화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대규모 AI 연산 인프라와 첨단 제조시설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신뢰 및 안전 규범 영역에서는 고영향 AI에 대한 기준 정립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국무조정실은 생명과 신체,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영향 AI 시스템에 대해 영역별 판단기준을 명확히 규정해 사업자의 규제 불확실성을 줄이겠다고 설명했다. 위험도가 높은 의료, 금융, 공공 부문 AI 서비스에 대한 책임과 관리 범위를 사전에 분명히 하는 대신, 그 밖의 분야에는 보다 유연한 규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접근으로 풀이된다.
국무조정실은 이날 로드맵이 기존 법제 정비 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 현장에 밀착한 규제 이슈를 발굴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무조정실은 "이번 로드맵은 법제 정비 중심의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 현장에 밀착한 규제 이슈를 발굴해 AI 기업 등의 현장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밝히며, "향후 기술 패러다임 전환 등 수요에 따라 추가적인 과제를 지속 발굴해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치권과 산업계에서는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보장, 노동시장 변화 등에 대한 쟁점이 본격 부각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가 AI 대전환을 앞세워 규제 합리화에 속도를 내는 만큼, 국회는 차기 회기에서 구체적인 입법 논의와 통제 장치 마련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