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네 차례째 2.5% 동결…한국은행, 환율·집값 불안에 완화 속도 조절
기준금리가 네 차례 연속 동결되면서 통화정책 완화 속도가 조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최근 1,470원대를 넘나드는 원달러 환율과 되살아나는 수도권 집값, 가계대출 급증이 맞물리며 금리 인하 여력을 제약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경기와 물가, 금융안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이 미세 조정자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향후 성장률과 물가 흐름, 부동산과 환율 지표에 따라 금리 경로가 다시 정교하게 재조정될 가능성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올해 2월과 5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총 1.00%포인트 인하한 이후 7월·8월·10월에 이어 이번까지 같은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처음 시도된 연속 인하로 통화 완화를 강하게 추진했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외환·부동산 시장 불안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면서 완화 기조에 브레이크가 걸린 모습이다.

시장 참가자들이 가장 주목한 지표는 환율이다. 지난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주간 거래 종가는 1,477.1원을 기록하며 약 7개월 만의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장중에도 1,477원대를 달리며 1,480원 진입을 위협했다. 미국의 통화정책 완화 시점이 불투명한 가운데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자금과 수출기업의 달러 보유 확대가 겹치며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진 상황이다. 기준금리를 추가로 낮출 경우 한미 금리차가 더 벌어지면서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와 환율 추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 금통위의 동결 결정에 직접적인 제동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흐름도 동결 배경의 중요한 축으로 꼽힌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11월 셋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20% 상승했다. 10·15 대책 발표 직후 상승률이 0.50%까지 치솟은 뒤 한차례 둔화됐지만, 한 달여 만에 다시 오름폭을 키운 셈이다.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20일 기준 769조원을 넘어서며 이달에만 2조6,000억원가량 늘었다. 하루 평균 증가 규모도 7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금통위가 결정문에서 수도권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리스크, 환율 변동성 확대 영향에 계속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한 대목은 추가 완화가 다시 집값과 빚을 자극할 수 있다는 내부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눈에 띄는 점은 한국은행이 동결을 택하면서도 성장률 전망은 상향 조정했다는 사실이다.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0.9%에서 1.0%로, 내년 성장률은 1.6%에서 1.8%로 높였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회복되고 민간 소비도 점진적으로 살아나고 있어 연초처럼 공격적인 경기 부양을 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경로도 환율과 내수 회복 영향으로 2%대 초반 수준을 제시하며 이전보다 다소 높은 물가 흐름을 예상했다. 통화 완화의 폭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제한된다는 의미라는 분석도 함께 제기된다.
통화정책 관련 문구 변화에서는 한은 내부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금통위는 10월 회의 결정문에서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나가되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번 결정문에서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되로 표현을 바꿨다. 수치상 기준금리는 그대로지만 완화를 전제로 한 기조라는 표현에서 조건부 가능성으로 한 발 물러선 셈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통화정책의 매파적 전환을 시사한다는 평가와 향후 여건 변화에 따른 유연성 확보 차원이라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추가 인하 여부와 시점을 두고 견해차가 크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수출과 소비 회복 흐름을 언급하며 추가 금리 인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성장률 상향 조정 등을 고려할 때 한은의 인하 사이클이 이미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관측을 내놨다. 반면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내년 4월 이창용 총재 교체 이후 하반기에 1~2차례 추가 인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내년 성장률 상승의 상당 부분이 기저효과에 따른 착시인 만큼 실물 경제의 체력은 여전히 약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같은 데이터를 두고도 통화정책 경로에 대한 해석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앞으로 통화정책이 경기 부양보다 성장·물가·금융안정 간 균형 조정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환경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이번 동결 결정은 한국은행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시장 인식에도 변화를 낳고 있다. 과거 경기 부양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던 통화당국은 고환율과 집값, 가계부채 리스크가 겹친 현 시점에서 당장의 금리 인하보다 시스템 안정을 우선하는 조정자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대내외 정책 여건과 성장·물가 흐름, 금융안정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기준금리 추가 인하 여부와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향후 정책 방향은 환율과 부동산, 가계부채를 포함한 주요 거시 지표의 흐름에 좌우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