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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 천년 고찰과 별빛”…부안에서 만나는 쉼표 같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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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 천년 고찰과 별빛”…부안에서 만나는 쉼표 같은 하루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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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느린 휴식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꼭 화창한 날이 아니어도 괜찮다. 흐릿한 하늘 아래,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부안이 그 해답이 돼준다.

 

전라북도 부안군은 서해안의 너른 갯벌과 변산반도 국립공원이 어우러진 고장이다. 멀리서 보면 평범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시간을 두고 둘러보면 다정하고 오래된 것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개암사로 향하는 고즈넉한 산길, 천년을 품은 사찰의 나무 그늘과 대웅전의 기둥에 이르면 일상의 번잡함이 조금씩 누그러든다. 이곳은 백제 시대에 처음 세워진 뒤, 오랜 세월 크고 작은 손길이 닿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부안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부안

부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소는 부안청자박물관이다. 청자의 빛깔을 직접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 한때는 누군가의 일상이었던 그릇이 오늘날엔 소중한 이야기가 돼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전시 공간과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도자기 한 점에 담긴 시간을 손끝으로 느껴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게 진짜 부안의 매력이지”라며 숙연해진다는 방문객도 많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전통 문화와 자연 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가 최근 인기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부안군의 방문객 수도 점차 늘고 있다. 특히 가족 단위 방문객과 청소년 체험 활동 참가율이 크게 상승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부안의 또 다른 얼굴도 드러난다. 부안청림천문대에서는 소형 망원경으로 성운을, 대형 망원경으로는 은하를 직접 바라볼 수 있다. 소음이 잦아든 밤하늘 아래 천체 관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맑은 날뿐만 아니라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우주의 호흡을 실감하게 된다. “별을 보는 시간만큼은 마음까지 투명해지는 것 같다”고 한 청소년의 소감이 인상적이다. 3D 우주 영상 체험을 마치고 나오는 관람객들은 저마다 “잠시나마 지구를 벗어난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사진보다 실제로 훨씬 아름답다”, “한적해서 더 좋았다”는 이야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온다. 짧은 여행이지만 부안의 느리게 흐르는 시간은 일상에 쉼표를 남긴다. 청자와 고찰, 그리고 밤하늘이라는, 누군가에겐 사소할 수 있는 풍경들이 모여 ‘나만의 휴식’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고요한 풍경과 옛 숨결,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까지. 부안에서의 하루는 도시의 피로를 걸러내고, 내일을 또 부드럽게 만드는 작은 기호가 돼준다. 작고 사소한 여행이지만,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다른 온도로 바뀌고 있다.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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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개암사#부안청림천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