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엡스타인 문건 전면 공개 추진”…미국 의회, 초당적 가결에 정계 파장 주목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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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8일, 미국(USA) 워싱턴DC에서 성범죄자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수사 문건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하원과 상원을 잇달아 통과했다. 이번 조치는 엡스타인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온 정·재계 인사들의 실명이 추가로 드러날 수 있어 미국 정계와 국제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현지 언론 NBC에 따르면 미 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 자료 공개를 강제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표결 결과는 찬성 427표, 반대 1표로, 사실상 전원 찬성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였다. 유일한 반대표는 공화당 소속 클레이 히긴스(루이지애나) 의원이 던졌다.

미국의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66)이 10일 교도소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진은 뉴욕주 성범죄자신상정보 제공. 2019.08.12 / 뉴시스
미국의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66)이 10일 교도소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진은 뉴욕주 성범죄자신상정보 제공. 2019.08.12 / 뉴시스

이어 상원에서도 엡스타인 관련 수사 기록 공개 법안이 표결에 부쳐졌고, 상원의원 전원이 찬성하는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로써 법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서명 절차만을 남겨 두게 됐다. 대통령 서명이 이뤄지면 법안은 정식으로 발효돼, 정부와 사법당국이 그동안 비공개로 유지해 온 엡스타인 관련 문건 다수가 공개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엡스타인 파일 공개 법안이 의회로 올라올 경우 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엡스타인과 우리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건 민주당의 문제”라고 말하며 자신과 측근들을 둘러싼 연루 의혹을 선제적으로 부인했다. 동시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화당 하원의원들에게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찬성 행보를 보였다.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은 최소 20여 명의 미성년 소녀들을 성매매에 동원한 혐의로 미국 연방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아 왔다. 그는 2019년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감 중이던 교도소에서 목을 맨 채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당국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경비 허점과 의료기록, 감시 카메라 작동 여부 등을 둘러싼 의문이 이어지면서 미국 사회 안팎에서 각종 음모론과 은폐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엡스타인 사건은 미국(USA)만이 아니라 영국(UK) 등 다른 서방 국가 핵심 인사들의 연루 의혹과도 맞물려 국제 현안으로 부상해 있었다. 그동안 공개된 자료와 증언에서는 각국 정치인, 재계 거물, 왕실 인사들이 엡스타인의 인맥 네트워크와 사유지에서 개최된 파티 등에 등장했다는 주장들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번에 미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문건 전면 공개를 밀어붙이면서, 엡스타인과 관계를 맺었던 인사들의 이름과 구체적인 행적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국과 동맹국의 정치 지형에도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을 부른다. 일부 외신은 문건 공개 범위에 따라 영국과 유럽(Europe) 주요국, 중동과 중남미 등지 고위 인사들의 이름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주요 언론은 이번 의회 표결이 “정파를 넘어선 드문 합의”라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실제 공개 범위와 비실명 처리 정도가 정치적 논란을 낳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NBC는 “미 의회가 엡스타인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 등은 “정치권과 사법 시스템의 책임을 되묻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관련 문건의 분류 해제 절차, 피해자 신원 보호 조치, 외국 정부와의 사법 공조 문제 등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엡스타인 파일이 공개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미국 정계와 재계, 국제 사회 곳곳에서 정치적 후폭풍이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범죄 사건 처리와 권력형 범죄 수사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사회와 인권 단체들은 엡스타인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보호와 진상 규명의 균형 있는 접근을 요구해 왔다. 이번 미국 의회의 전향적 조치가 실질적인 책임 규명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문건 공개가 향후 국제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되고 있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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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엡스타인#도널드트럼프#미국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