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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생일, 워싱턴에 군사 퍼레이드”…미 전역은 ‘노 킹스’ 포효→갈라진 미국 민심 어디로
국제

“트럼프 생일, 워싱턴에 군사 퍼레이드”…미 전역은 ‘노 킹스’ 포효→갈라진 미국 민심 어디로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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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워싱턴은 고요하면서도 불길하게 고조된 분위기로 가득했다. 콘스티투션 애비뉴에 흰 군복이 행진하는 가운데, 링컨기념관과 워싱턴모뉴먼트 너머로 들려오는 군악대의 리듬은 한 시대의 기억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 기념이며 축전의 시간은 동시에, 미국 각지의 광장마다 울려 퍼진 외침과 마주하며 더욱 선명한 대립의 풍경을 연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 미국은 오늘 또 한 번 양 극으로 갈라섰다.

 

수도 워싱턴DC에서는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성대하게 펼쳐졌다. 군인 6천700명, 군용 차량 150대, 항공기 50대가 콘스티투션 애비뉴를 꽉 채우며 위용을 드러냈고,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주요 내각 인사들은 단상에 나란히 자리했다. 21발의 예포와 함께 시작된 이 군사 퍼레이드는 에이브럼스 탱크, 스트라이커 장갑차, 아파치 헬기 등 미 육군의 숙명과 역사를 웅변하는 전력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내며, 자유와 힘을 동시에 노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들은 미국민을 위협할 때마다 완전한 몰락을 맞이할 것”이라며, 강인한 군사력과 함께 자유의 엄중함을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생일날 워싱턴은 열병식…전국은 ‘노 킹스’ 외친 반트럼프 시위로 들끓었다 / 연합뉴스
트럼프 생일날 워싱턴은 열병식…전국은 ‘노 킹스’ 외친 반트럼프 시위로 들끓었다 / 연합뉴스

그러나 같은 시간, 필라델피아와 뉴욕, LA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하늘 아래에서는 또 다른 거대한 흐름이 길 위를 차지했다. ‘노 킹스(No Kings)’라 적힌 손팻말과 함께, 인디비저블, ACLU 등 단체가 주도한 반트럼프 시위에는 필라델피아 10만, 뉴욕 5만, LA 2만5천 등, 약 2천 곳에서 시민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들은 “트럼프 아웃”, “우리에게 왕은 없다”는 구호로 미국 민주주의의 근본을 부르짖었고, 여성 인권, 이민자 보호,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도 길게 퍼져나갔다. 자유의 상징인 필라델피아에서도, 영화처럼 계단을 오르며 ‘자유의 종을 울리자’고 외치는 인파가 도시를 흔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열병식을 두고 러시아와 북한의 권위주의적 전통을 연상시키는 군사적 쇼라고 비유했다. 각 도시의 거리는 평화와 열기로 가득했으나, LA에선 경찰과의 충돌로 야간 통금령이 내려졌고, 애틀랜타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름을 왕으로 기리자는 구호가 번졌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선 총격으로 부상자가 발생했고, 오스틴에선 위협 신고로 집회가 중단되는 등 긴장도 높아졌다. 뉴욕 5번가도 블록마다 시위 참가자가 가득 차, 동성애자 권리, 가자지구 전쟁 중단 등 진보적 이슈들이 한데 모였다.

 

시위에 나온 멜버른 출신 교사 엘렌 프랭크는 “우리 조상은 이런 미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고 말했고, 러시아 출신 예브게니 슐킨은 “우리는 짜르가 필요 없다”고 항변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 권력 집중에 대한 경고, 미국 사회 곳곳에서 터진 마르틴 루터 킹의 이름은 이날 더욱 벅차게 울려 퍼졌다.

 

워싱턴의 퍼레이드는 어쩌면 힘의 경연이자, 역사의 자부심이었다. 반면 전국을 뒤덮은 ‘노 킹스’ 시위는 권력 남용에 맞선 민주주의 본성의 자각이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생일의 광장과 거리에서, 권위와 저항, 힘과 자유, 두 빛깔의 시대적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청명한 장면을 그려냈다.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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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노킹스시위#미육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