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B 파운데이션 모델 도전"…SKT-크래프톤, K-AI 생태계 묶는다
초거대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이 국내 ICT 기업과 스타트업, 학계의 공동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SK텔레콤과 크래프톤이 5000억 개 파라미터급 모델 개발 구체 구상을 공유하고, 게임·모빌리티·AI 반도체·데이터 기업까지 묶는 컨소시엄형 협력 구조를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언어모델과 멀티모달, AI 반도체를 묶는 이른바 K-AI 풀스택 생태계 실험으로 평가하며, 글로벌 빅테크 중심으로 전개된 초거대 AI 경쟁 구도에 국내 연합전선이 본격 형성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크래프톤은 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독자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에 참여 중인 SK텔레콤 정예팀과 대학·스타트업 연구자들이 함께한 2025 파운데이션 모델 테크 워크숍을 전날 서울 성수동 워룸에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워크숍에는 크래프톤과 SK텔레콤, 포티투닷, 리벨리온, 라이너, 셀렉트스타, 서울대학교, KAIST 등 8개 기관이 모여 파운데이션 모델 연구의 최신 기술 동향과 응용 사례를 공유하고, 국내 AI 생태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행사의 중심 축은 SK텔레콤 컨소시엄이 추진 중인 초대형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였다. 김태윤 SK텔레콤 파운데이션 모델 담당은 대한민국 AI 국가대표, SKT 컨소시엄이 만드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을 주제로, 500B 수준의 초거대 모델 개발에 도전하게 된 배경과 연구 로드맵을 소개했다. 파라미터 수는 모델이 학습하는 가중치 개수를 뜻하는 핵심 지표로, 5000억 개 규모는 글로벌 빅테크가 상용 서비스에 적용 중인 상위권 모델 스펙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발표에 따르면 SK텔레콤 정예팀은 한국어와 멀티언어를 동시에 겨냥한 범용 생성형 모델을 기획하고 있으며, 통신사 네트워크·미디어·고객 응대에 더해 게임과 모빌리티 등 파트너 산업을 아우르는 공용 인프라로 활용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파운데이션 모델의 학습·추론 효율을 높이기 위해 모델 구조 최적화와 데이터 파이프라인 고도화, AI 반도체 기반 인프라 연계를 병행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세션에서는 대규모 모델을 구성하는 세부 요소와 차별화 포인트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서울대학교 김건희 교수는 멀티모달 학습 기반 오디오 생성 연구를 공개했다. 멀티모달 학습은 텍스트·음성·이미지 등 서로 다른 형태의 데이터를 동시에 학습시켜, 모델이 다양한 입력을 이해하고 결합된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언어와 음성을 함께 처리해 더 자연스러운 목소리와 상황에 맞는 오디오를 생성하는 알고리즘을 소개하며, 차세대 음성 비서, 콘텐츠 제작, 게임 내 캐릭터 대사 생성 등 응용 방향을 제시했다.
KAIST 이기민 교수는 대규모 언어모델을 확장한 액션 모델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액션 모델은 텍스트로만 답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외부 도구를 호출하거나 복수의 시스템을 오케스트레이션해 실제 행동을 수행하는 형태의 에이전트 기술이다. 이 교수는 LLM 기반 액션 모델이 작업 계획 수립, API 연동, 복합 명령 수행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설명하며, 향후 산업 현장에서 자동화된 업무 비서와 로보틱스 제어, 서비스 운영 최적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언급했다.
국산 AI 반도체와의 결합 구상도 소개됐다. 리벨리온 김홍석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는 자사 AI 반도체 기반 추론 최적화 기술을 공유했다. 발표에 따르면 리벨리온은 초거대 모델을 효율적으로 서비스하기 위해 연산 구조를 칩 아키텍처에 최적화하고, 메모리 사용량과 지연 시간을 줄이는 소프트웨어 스택을 개발 중이다. SK텔레콤 컨소시엄이 500B급 모델을 실제 서비스에 활용하려면 전력과 비용 부담을 줄이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공동 설계가 필수인 만큼, 국산 AI 반도체와의 연계는 국내 기술 자립도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왔다.
게임과 콘텐츠 분야에서는 크래프톤의 실제 적용 사례가 공개됐다. 제갈윤 매니저는 사내 AI 에이전트 KRIS를 소개했다. KRIS는 크래프톤 인텔리전스 시스템의 약자로, 내부 업무 자동화와 의사결정 지원을 목표로 구축된 에이전트형 플랫폼이다. 대규모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사내 문서를 분석하고, 개발 문서 요약, 코드 검토, 운영 리포트 작성 등 다양한 업무를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크래프톤 측은 KRIS를 통해 반복적인 업무 시간을 줄이고, 개발자와 기획자가 창의적인 작업에 더 집중하도록 돕는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어 김현승 팀장은 이용자와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며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반응하는 새로운 개념의 CPC, 즉 Co-Playable Character PUBG Ally를 소개했다. PUBG Ally는 플레이어와 같은 팀을 이루어 전장에 참여하는 AI 동료 캐릭터로, 이용자의 플레이 스타일과 전황에 맞춰 전략을 조정하고 음성이나 텍스트로 소통하도록 설계됐다. 기존 봇이 단순 패턴 기반이었던 것과 달리, Ally는 상황 인식과 전략 수립 능력을 강화해 인간과 함께 플레이하는 동반자 경험에 가까운 AI를 지향한다. 업계에서는 이 사례가 파운데이션 모델이 연구 단계를 넘어 실제 게임 서비스 경험을 바꾸는 초기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워크숍에는 포티투닷과 라이너, 셀렉트스타 등도 참여해 데이터, 모빌리티, 생산성 도구 등 각자의 영역에서 파운데이션 모델 활용 방안을 공유했다. 포티투닷은 자율주행과 모빌리티 서비스에 필요한 센서 데이터와 지도 정보, 교통 패턴 데이터를 어떻게 대규모 모델과 결합할지 논의했고, 라이너와 셀렉트스타는 데이터 라벨링과 사용자 행동 데이터가 모델 성능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운데이션 모델의 성능이 모델 크기 뿐 아니라 고품질 데이터 확보와 도메인 특화 튜닝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데이터 기업과 서비스 기업의 초기 연합은 국내 생태계 형성의 필수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과 중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초거대 언어모델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오픈AI, 구글, 메타 등이 수천억에서 조 단위 파라미터 모델을 공개하며 범용 에이전트 경쟁에 나서고 있고, 중국도 대형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자국어 특화 모델을 다수 개발 중이다. 유럽에서는 규제와 윤리 프레임워크 정비를 병행하며 산업 정책을 다듬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데이터 규모와 클라우드 인프라, 반도체 설계 역량에서 강점과 제약이 공존하는 구조여서, 단일 기업의 독자 경쟁보다는 SK텔레콤 컨소시엄처럼 통신, 게임, 반도체, 학계가 묶인 연합 모델이 현실적인 전략으로 거론된다.
정책 측면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을 통해 연구·산업계 협력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대규모 데이터 확보를 둘러싼 개인정보 보호 규제,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저작권 문제, 알고리즘 투명성 등은 향후 제도화 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 특히 500B급 모델이 상용 서비스에 적용될 경우, 통신·게임·모빌리티 각 영역에서 이용자 데이터 활용 범위와 설명 책임을 둘러싼 추가 가이드라인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강욱 크래프톤 AI 본부장은 이번 워크숍은 SK텔레콤 컨소시엄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국내 AI 연구자와 산업계가 협력의 기반을 다진 자리였다고 평가하며, 크래프톤이 앞으로도 국내 AI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는 활동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김태윤 SK텔레콤 파운데이션 모델 담당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철학을 참가자들과 공유하고 사용자 관점에서의 질문에 답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과 크래프톤이 주도하는 이번 연합이 단기적으로는 한국어와 국내 서비스 특화 초거대 모델 경쟁력을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국산 AI 반도체와 결합한 풀스택 AI 인프라 구축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워크숍에서 논의된 기술과 협력 구상이 실제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져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분위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