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비 반 토막 냈던 야당이더니"…여야, 4조2천억 정부 예비비 두고 정면 충돌
예비비 편성을 둘러싼 공방이 다시 불붙었다. 이재명 정부 첫 예산안에 포함된 4조2천억원 규모 정부 예비비를 두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여야가 거세게 맞섰다. 윤석열 정부 시기 예비비를 대폭 삭감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엔 원안 사수를 외치자, 국민의힘은 내로남불이라고 반격하며 정면 충돌 양상으로 번졌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서 여야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예비비 배정을 놓고 거센 공방을 벌였다. 쟁점은 이재명 정부가 제출한 4조2천억원 규모 예비비와 그 집행의 투명성, 그리고 전 정부 예산 심사에 대한 책임 문제였다.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정조준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은 지난해 일방적으로 예비비를 삭감해놓고 여당이 되니 4조2천억원을 편성했다"며 "내로남불, 안면몰수 편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올해 청와대 이전 공사 등에 들어간 예비비 집행 내역도 불투명한데, 내년 예산안에는 용처도 없는 순수 예비비를 8천억원이나 확보했다"며 "이 금액은 전액 삭감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강승규 의원도 공세에 가세했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강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은 그렇게 멋진 예산 심의를 하면서 예산안을 난도질해놓고, 사과 한번 없이 내년 예산을 편성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부분에 대해 민주당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하면 국민들께는 '또 장난하는구나'라는 식으로밖에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정훈 의원 역시 "어떻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고 주장하나"라며 "이 부분에 대해 민주당의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전 정부 예비비 삭감에 대한 책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이소영 의원은 "당 차원 유감 표명 요구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당시 야당을 설득하려는 정치적 노력을 하지 않고 비상계엄이란 군사적 방법을 동원했단 부분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 시절 민주당의 예산안 대응에는 당시 정부의 정치적 대응 방식이 작용했다는 취지다.
이 발언을 두고 양측은 다시 충돌했다. 강승규 의원이 "교묘한 팩트 체킹"이라며 "작년 예결소위에서 민주당이 누군가의 '오더'를 받고 일방적으로 삭감 예산을 통과시킨 게 계엄 후라는 거냐"고 따져 묻자, 이소영 의원은 "계엄 전"이라고 짧게 받아쳤다. 정치적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이 예비비 논의를 덮어버린 셈이다.
민주당은 예비비 필요성 자체를 강조했다. 박민규 의원은 "예비비 집행이 불투명한 건 문제가 맞지만, 내년부터 예비비 사용 계획서를 국회에 분기별로 보고하게 된 만큼 예측 불가능한 정부의 행정 보장을 위해서라도 원안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리·감시 장치를 강화한 만큼 일정 수준의 예비비는 유지돼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여야 입장 차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예산안조정소위는 이날 예비비 관련 심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추후로 미루기로 했다. 이로써 이재명 정부 첫 예산안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예비비 규모와 운용 방식은 당분간 국회 논의 테이블에 그대로 남게 됐다.
예비비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여야는 한미 관세협상과 연계된 예산도 놓고 거친 신경전을 벌였다.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미국 조선업 지원을 겨냥한 1조9천억원 규모 마스가 관련 대미 투자 재원 계획을 따져 물었다. 그는 "전혀 설명이 없는 깜깜이 대미투자특별법"이라고 지적하며 정부 설명 책임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소영 의원은 "향후 특별법 법안 제정을 전제로 예산 증액을 추후에 논의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팩트시트 내용을 두고 상세히 토론하려 하면 소위를 밤새 해도 부족하다"고 말하며 세부 논의는 추후로 미루자는 입장을 밝혔다. 법적 근거와 세부 설계가 미완인 상황에서 예산부터 논의하는 것 아니냐는 야당 문제제기와, 큰 틀의 방향성을 먼저 세우자는 여당 논리가 맞서는 구도다.
시민단체 지원 논란이 반복돼온 사회적 협동조합 예산도 난항을 겪었다. 국민의힘은 해당 예산이 진보 성향 시민단체 지원 창구로 활용돼왔다며 감액을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정부에서 지나치게 예산이 삭감됐다"고 맞섰다. 민주당은 "예산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방어에 나섰고, 국민의힘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회의장에서는 한때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이 예산 역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심사가 보류됐다.
예산소위가 가동된 지 이틀째지만, 여야는 예비비, 대미 투자, 사회적 협동조합 등 굵직한 쟁점마다 강경한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다. 예비비 규모와 집행 관리 방식부터 외교·산업 전략 예산까지 모두 정치 공방의 직격권에 들면서,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장기 공전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향후 예산안조정소위를 재개해 보류된 안건들을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다만 예비비와 한미 관세협상 관련 예산 등 상징성이 큰 사안에서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정기국회 막판까지 여야의 예산 전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