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국가 이미지 부각”…김정은, 다자외교 확장으로 대외 고립 탈피 시도
정치적 고립 이미지와 '은둔형 지도자' 프레임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중국·러시아와의 연대에 주력하며 다자외교 무대로 외연을 확장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국제질서의 전환기 속에서 북한은 대외 고립에서 벗어나 정상 국가의 이미지를 부각하려 전략적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며 집권 14년 만에 처음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선 김정은 위원장은 이른바 '반미 연대'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는 평가다. 대외적으로 '국제 고립'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벗고 정상 국가 지도자로 부각하려는 의도 역시 뚜렷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은 또 세계 최대 다자외교 행사인 유엔 총회에도 7년 만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차관급인 김선경 외무성 부상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핵 포기 절대불가"를 강하게 강조했다. 그는 유엔 총회 기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물론, 쿠바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등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 인사들과도 연쇄 회동을 가졌다. 북한은 코로나19 이후 단절됐던 국제기구와의 접촉도 재개하고 있다. 지난 8월 태국 방콕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프로그램에는 평양 농업과학원 대표단이 참석했고, 이 자리에서 조 콜럼바노 신임 유엔 상주조정관과의 첫 접점도 만들어졌다. 콜럼바노 조정관은 "유엔 북한팀이 평양에 마지막으로 간 지 벌써 5년이 지났다"고 복귀 의지를 표명했다.
이처럼 북한이 자력갱생에서 벗어나 다자외교를 강화하려는 기조는 최선희 외무상의 공식 발언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최 외무상은 지난달 28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에서 "중국과 다자 협조를 긴밀히 하고, 함께 일방주의와 강권 정치를 저지하겠다"고 언급했다. 미국을 겨냥한 대목임과 동시에, 양자 협력보다는 다자 연대를 통한 외교력 확대 의지가 명확히 읽히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치권과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 같은 변화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전략적 시도가 한층 분명해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 브릭스 등 다자기구 가입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은 "지역 네트워크 강화와 반미연대가 북한 체제 보장과 외교적 성과의 동시에 될 수 있다"며 "지역 다자기구 가입이 체제 유지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같이 북한이 다시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정부와 국제 사회가 북한의 대외 전략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향후 북한의 다자기구 가입 추진 속도와 그에 따른 외교 지형 변화가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