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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재시동이냐 보안복원이냐”…KT, 차기 대표 선출 분수령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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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차기 대표이사 선출이 보안 위기와 AI 전환 전략의 기로가 되고 있다. 올해 대규모 소액결제 해킹 사태로 신뢰가 흔들린 가운데, KT가 추진해 온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전환 전략까지 차질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통신을 넘어 AI 인프라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KT의 향후 5년 전략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차기 수장은 보안 체계 전면 재정비와 AI 전환 투자 재가동, 정치적 독립성 확보라는 삼중 과제를 안고 출발하게 될 전망이다.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16일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 주형철 전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 홍원표 전 SK쉴더스 대표 등 3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진행한다. 이추위는 직무수행계획 발표와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후보별 전략과 리더십 역량을 검증한 뒤, 연내 최종 후보 1인을 확정한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공식 선임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김영섭 현 대표이사는 해킹 사태 책임을 이유로 연임에 도전하지 않았다.

세 후보의 면면을 보면 KT 내부 출신과 외부 ICT 전문가, 그리고 통신과 제조, 보안을 아우른 기술통 구도가 형성됐다. 박윤영 전 사장은 1992년 한국통신 입사 후 30년 넘게 재직한 대표적인 정통 KT맨이다. 미래사업개발, 글로벌사업, 기업부문을 두루 거치며 B2B 중심의 성장 전략을 이끌어 왔다. 그룹 내부 사정에 밝고 조직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 대규모 보안 사고 이후 내부 안정과 수습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기업 고객 대상 통신·클라우드·AI 융합 사업 경험이 풍부해 KT의 B2B 기반 AI 전환 사업을 강화할 적임자라는 시각도 있다.

 

다만 박 전 사장은 일반 소비자 대상 B2C 사업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통신사의 AI 전략이 고객 접점 서비스, 초개인화 상품, 미디어·콘텐츠 분야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B2C 이해도가 관건이 될 수 있어서다. 그는 2020년과 2023년에도 대표이사 최종 후보군에 올랐지만 고배를 마신 바 있어, 세 번째 도전에서 내부 신뢰와 외부 관전 포인트가 동시에 모이고 있다.

 

주형철 전 대표는 세 명 중 유일하게 KT 경력이 없는 완전 외부 인사다. SK텔레콤과 SK C&C 등에서 ICT 전략과 서비스 사업을 맡았고,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로 4년간 재직하며 포털과 플랫폼 비즈니스 경험을 쌓았다. 이후 서울산업진흥원 대표, 경기연구원장 등 공공기관 수장을 역임해 스타트업 지원과 지역 산업 전략에도 관여했다. 통신·플랫폼·공공을 아우르는 이력은 정부 정책과 기업 전략을 연계하는 데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문재인 정부 대통령 경제보좌관, 현 정부 출범 당시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 등을 지내며 정책 결정 구조를 경험한 점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디지털 인프라 투자, AI·클라우드 규제, 보안 관련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물로 분류된다. 반면 잦은 정권과의 접점은 낙하산 논란을 키우는 요인이기도 하다. KT는 과거 정권 영향 아래 CEO 인사가 이뤄졌다는 비판을 반복적으로 받았고, 그때마다 지배구조와 경영 독립성 논쟁이 불거졌다. 이번에도 정부와의 연결성에 대한 의구심을 어떻게 잠재우느냐가 주 전 대표의 가장 큰 부담으로 꼽힌다.

 

홍원표 전 대표는 ICT 전 분야를 두루 거친 기술통 리더로 평가된다. 과거 KTF 마케팅부문장 등으로 KT 계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고, 이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장과 삼성SDS 대표를 맡으며 모바일과 솔루션, 엔터프라이즈 IT를 이끌었다. 2023년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SK쉴더스를 이끌며 물리·정보보안을 통합하는 보안 사업 전반을 경험했다. 통신망과 단말, 클라우드, 보안을 모두 이해하는 경력은 현재 KT의 핵심 과제인 보안 체질 개선과 AI·DX 사업 결합 전략 수립에 직결되는 자산으로 평가된다.

 

다만 KT를 떠난 지 20여 년이 흘러 급변한 통신·플랫폼 시장 구조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동통신 3사는 5G 이후 네트워크 기업에서 AI 인프라·클라우드 사업자로 포지셔닝을 전환하고 있고, 구독형 미디어·금융·커머스 등 비통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SK 계열사 대표 경력 역시 KT 내부 구성원에게는 경쟁사 출신에 대한 거부감이나 이해충돌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새 대표가 직면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소액결제 해킹 사태 수습이다. 통신사는 수천만 이용자의 개인정보와 결제 정보를 다루는 만큼, 기술적 보안뿐 아니라 신뢰 관리가 사업 기반 자체를 좌우한다. 이번 사태로 KT는 결제 모듈·인증 체계·내부 접근 권한 관리 등 전 영역에서 취약 지점을 드러냈고, 고객과 시장의 신뢰도 크게 떨어졌다. 새 수장은 침해 사고 원인 규명과 보안 아키텍처 재설계, 외부 보안 검증 강화, 피해 고객에 대한 신속한 보상과 소송 리스크 관리 등 전방위 대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보안 체계 재구축은 KT가 앞으로 전개할 AI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AI 서비스 고도화는 방대한 고객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체계가 확실하지 않으면 신규 서비스 확장은 제동을 걸릴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KT가 고객 맞춤형 AI 콜센터, 네트워크 예측 유지보수, 산업용 AX 프로젝트를 확대하려면 데이터 암호화, 접근 통제, 이상 탐지 AI 등을 포함한 보안 인프라와 거버넌스 전면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AI 및 디지털 전환 사업 재시동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KT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해 5년간 2조4000억 원을 투자하고, 4조6000억 원 규모의 AI 전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통신 인프라와 클라우드를 결합한 엔터프라이즈 AI 플랫폼을 구축해 제조, 금융, 공공, 유통 등 전 산업의 디지털 전환 파트너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해킹 사태 여파로 KT의 보안 역량과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며, 대형 고객사와 공공기관이 AI·클라우드 프로젝트를 맡기기를 주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서 KT가 탈락한 점도 상징적이다. 경쟁 통신사들이 초거대 AI 개발과 산업 적용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생태계를 넓히는 사이, KT는 클라우드와 통신 인프라 강점을 살린 차별화 전략을 독자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KT가 생성형 AI 모델 개발 경쟁에만 매달리기보다, 통신 데이터와 네트워크 운용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특화형 AI, 산업 현장 AX 솔루션, 보안 연계 서비스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차기 대표는 동시에 정치적 독립성과 지배구조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도 마주하게 된다. KT는 과거부터 정권 교체 때마다 CEO 인사 논란이 반복돼 왔고, 그때마다 장기 전략이 단절되거나 대규모 조직 개편이 이어지며 기술 투자와 사업 연속성에 부담이 됐다. AI 인프라와 보안 투자는 5년 이상 중장기 관점이 필요한 만큼, 시장에서는 이번 인사를 계기로 정치권과 거리를 둔 지배구조 개편까지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통신 3사는 모두 AI와 보안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내세우고 있다. 경쟁사들은 자체 초거대 AI 개발, 데이터센터 확충, 보안 자회사 강화로 AI 기반 플랫폼 기업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신사는 클라우드 사업자와 손잡고 AI 통신망, 보안 서비스, 엣지 컴퓨팅을 묶은 패키지 사업을 전개 중이다. KT가 이번 인사를 계기로 보안 신뢰 회복과 AI·DX 전략 재정렬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시장 주도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도 거론된다.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이날 면접을 통해 3인의 리더십과 전략 실행력을 검증한 뒤, KT가 마주한 보안 위기와 AI 전환 과제를 동시에 풀어갈 1인을 최종 낙점할 계획이다. 산업계는 새 리더십 아래 KT가 보안과 AI를 축으로 한 미래 전략을 얼마나 일관되게 추진하며, 정치 논란을 최소화한 안정적 지배구조를 구축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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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박윤영#주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