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의 개척자 장보고함 마지막 항해”…해군, 34년 잠수함 시대 1막 마무리
군 현대화의 상징이었던 한국 첫 잠수함 장보고함 퇴역을 앞두고 국방 역사의 한 장이 접히고 있다. 잠수함 전력이 전무하던 시절 수중 영역을 개척했던 함정이 임무를 내려놓으면서, 핵추진잠수함 논의까지 이어지는 해군력 변화의 속도가 부각되고 있다.
장보고함 SSⅠ 1천200t급은 연말 공식 퇴역을 앞두고 11월 19일 경상남도 진해군항에서 마지막 항해를 실시했다. 1992년 독일에서 인수돼 1993년 6월 대한민국 해군 첫 잠수함으로 취역한 뒤 30년 넘게 임무를 수행해 온 함정이다.

해군에 따르면 장보고함은 이날 오후 진해군항을 출항해 약 2시간 동안 주변 해역을 항해했다. 마지막 항해에는 장보고함 첫 항해를 지휘했던 안병구 초대함장 예비역 준장을 비롯해 당시 무장관과 주임원사 등 인수 요원 4명이 함께 승선했다.
장보고함이 최종 항해를 마치고 부두로 복귀하자, 진해군항에 정박해 있던 잠수함들이 일제히 기적을 울려 임무 완수를 기렸다. 한국 잠수함 전력의 출발점이었던 장보고함에 대해 잠수함 장병들이 예우를 표한 셈이다.
장보고함은 1988년 독일 HDW조선소에서 건조를 시작해 1991년 진수됐고, 1992년 해군에 인수됐다. 해군은 첫 잠수함 명칭을 통일신라 시대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양 진출에 나섰던 장보고 대사의 이름에서 따와 장보고함으로 정했다.
장보고함은 1992년부터 2025년까지 햇수로 34년 동안 지구 둘레 15바퀴를 넘는 약 34만2천 마일, 약 63만3천㎞를 안전하게 항해했다. 특히 2004년 환태평양훈련에서 미국 항공모함을 포함한 30여 척의 함정을 상대로 모의 공격을 수행하면서, 단 한 차례도 탐지되지 않은 채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평가됐다. 해군은 당시 훈련을 계기로 한국 잠수함 운용 능력이 국제사회에 각인됐다고 설명했다.
장보고함은 2023년까지 작전 임무를 계속 수행하다가 지난해부터 훈련함으로 전환돼 잠수함 승조원 교육훈련과 자격 유지 훈련 지원 임무를 맡아 왔다. 해군은 연말 퇴역 이후 장보고함을 방산 수출과 협력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잠수함 설계와 수출을 홍보하는 상징 자산으로 삼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마지막 항해에 오른 안병구 초대함장은 장보고함이 남긴 의미를 해군 수중전력의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그는 “장보고함 도입 전 수중은 우리 해군의 영역이 아니었다”며 “미지의 세계였던 대한민국 바닷속을 개척한 해양의 개척자 장보고함의 처음과 마지막 항해를 함께해 영광”이라고 말했다.
안 초대함장은 장기간 운용에도 불구하고 장보고함 상태가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함정 내부는 도입 당시 새로 받았을 때만큼 관리가 잘 돼 있는 것 같다”며 “잠망경을 보는 순간 승조원 총원이 정적 속에 내 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잠수함 전력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핵추진잠수함 논의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안 초대함장은 “잠수함부대가 상상했던 것보다 놀랍도록 발전했다. 핵추진잠수함 시대가 와 격세지감”이라며 “잠수함 승조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안전하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길 바라고, 승조원들의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장보고함 퇴역은 한국 해군 잠수함 전력이 양적·질적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한 세대의 교체를 상징한다. 국방부와 해군이 중장기 전력 증강 계획 속에서 잠수함 부대 운용 개념을 재정비하고 있어, 향후 국회와 정치권에서 관련 예산과 핵추진잠수함 추진 방향을 둘러싼 논의가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정치권은 향후 방산 수출 전략과 연계된 잠수함 사업의 파급 효과, 장병 복무 여건 개선 문제를 놓고 국정감사와 예산 심사 과정에서 질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해군 잠수함 전력 강화와 승조원 처우 개선 방안을 함께 점검하는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