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참여 필요하지만 현행 방식엔 냉담”…주산연, 공공대행형 정비사업 제도 제안
도시 정비 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두고 공공과 주민 사이의 역할 재조정 논의가 본격화했다. 공공 주도형 정비사업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한 가운데, 공공이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조합과 주민의 의사결정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주택산업연구원은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 더불어민주당 안태준 의원,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와 함께 도시 정비 활성화 및 공공 참여 촉진 방안 세미나를 열고 공공대행형 정비사업 제도 도입을 공식 제안했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이지현 주택산업연구원 도시정비실장은 현행 공공 시행 제도의 한계를 먼저 짚었다. 그는 공공 시행 제도에 대해 "주민 의사 결정권 축소, 공공 임대 비율 강화 등의 제약 요인이 많고 인센티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 수용도가 낮은 공공 주도형 도시정비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주민 수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공공 참여 방식을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이달 서울 지역 48개 정비사업 추진위원회와 조합 집행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공 참여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78.7%로 높게 집계됐다. 그러나 현재의 공공 시행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응답은 31.9%에 머물면서, 공공 참여 필요성과 현행 제도에 대한 선호 사이의 간극이 드러났다.
현행 공공 시행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로는 조합원 이익 침해 우려가 45.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조합원 의사 결정권 축소 문제 43.7%, 공공 기여 증가에 따른 사업성 저하 39.6% 순으로 응답률이 집계됐다. 조합과 주민 입장에서 공공 참여가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수익성과 권한 측면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공공 참여 방식 추진 시 제도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는 주요 의사결정권을 조합이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52.1%로 가장 많았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은 공공이 대행해달라는 의견도 50.0%로 절반을 차지했다. 또 공공 기여 기준을 조합 방식과 같거나 더 낮게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공공 주도의 총괄 관리 체계 구축 필요성 의견은 각각 37.5%를 기록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공공대행형 정비사업 제도의 구체적인 운영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시공사 선정 업무를 공공이 대행하되, 시공 품질 수준과 공사비 가액 결정, 계약 체결 전 단계에서 조합 의견을 반영하고 주민 동의를 받는 절차를 두자고 제안했다. 공공이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는 대신, 최종 선택권은 주민에게 남겨야 한다는 취지다.
또 불가피한 공사비 증액 협상도 공공 대행자가 맡도록 하되 최종 결정 사항은 주민 동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내놨다. 공공이 복잡한 협상을 책임지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은 주민이 함께 하도록 하는 역할 분담 구상이다.
용역사 선정 구조도 세분화했다. 감정평가, 환경영향평가처럼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덜 요구되는 영역은 현행처럼 조합이 선정하도록 하고,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은 공공이 선정하는 방식이 제시됐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이를 통해 조합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사업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합원 이익 침해 우려를 줄이기 위한 재무·사업성 대책도 포함됐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일반분양분 적용 건축비를 조합원 부담 건축비와 동일하게 맞추고, 공공임대 비율 역시 조합 방식과 동일하게 유지해 조합원 이익이 줄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공공 대행 방식에 현행 공공주도형 방식과 동일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동시에, 추가 혜택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가 인센티브 방안으로는 조합 운영비 대여, 사업비 조달 과정에서 공공자금 지원과 보증 제공, 일반분양분 미분양 발생 시 공공 대행 기관의 매입 확약 등이 언급됐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이런 장치를 통해 조합의 금융 부담과 미분양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를 공동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안태준 의원은 공공 참여 확대와 주민 수용도 제고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구체적인 입법 방향과 제도 설계는 향후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회와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 정책 재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공공대행형 정비사업 제도 논의는 향후 관련 법·제도 개정 과정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는 추후 상임위원회 논의와 추가 공청회 등을 통해 공공 참여 방식 개선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