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데레사, 꽃과 눈물이 흐른 산골 모녀사랑”…인간극장 울림→잃어도 피어나는 희망의 이유
경북 영천 깊은 산골, 두 채의 오두막집이 이방인을 품고 있었다. 정데레사와 어머니 김정순은 도시의 소음을 저멀리 둔 채 서로를 바라보며 하루를 버티고, 서로의 존재로 겨울 같은 인생을 덥히고 있었다. 미국에서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이민자로 살아온 지난 세월은, 정데레사에게 결코 쉽지 않은 고비였다. 짧은 결혼의 끝자락에서 홀로 자식을 키워냈던 시간,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고국의 흙내음 속에서 두 모녀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모녀는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집에서 살아가지만, 어느새 함께한 추억은 막걸리 잔만큼이나 담백하게 쌓였다. 고단한 이야기와 따뜻한 위로가 이웃 사이에도 번졌다. 하지만 운명의 가혹함은 다시 한 번 정데레사를 덮쳤다. 미국에 남긴 큰아들의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은 일상을 산산이 부숴놓았다. 고독과 절망, 그리고 한없이 무거운 침묵이 산골을 채웠지만, 데레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산자락에 꽃 모종을 심으며, 아픔을 조심스레 땅속에 묻었다.

번잡한 서울 꽃시장으로 일주일에 두 번 오가고, 고양이와 염소, 당나귀와 삶을 나누는 산골의 일상은 결핍을 채우는 작은 기쁨이 됐다. 흙을 일구고 씨를 뿌릴 때마다 데레사는 아이를 키우던 기억에 젖었고, 자연은 상실의 그림자마저 포근하게 덮었다. 서툰 돌봄과 투정, 팔순의 어머니와 환갑을 넘긴 딸이 하루에도 수차례 웃고 토라지며, 먼 세월의 틈도 서서히 메워졌다. 누군가 스님의 물 한 모금으로 안부를 묻고, 마을 모임의 소소한 자리가 데레사에게는 큰 위로가 됐다.
아픔을 딛고 모녀가 일군 작은 꽃밭은 고요한 평화를 노래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척박한 땅에도 꽃은 피어나듯, 데레사는 자신의 상처와 시간을 한 송이씩 깨어냈다. 오늘도 모녀는 떨어져 있으면서도 닿아있는 마음으로 삶을 견딘다. 정데레사가 “잃는 아픔과 견디는 나날 모두가 한 송이 꽃이었다”고 전한 것은, 바로 삶의 상처마저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이었다.
한편, 꽃과 땅, 그리고 두 모녀의 묵직한 이야기를 담은 KBS1 ‘인간극장-데레사의 꽃밭’은 9월 19일 금요일 오전 7시 50분 마지막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