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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의료분쟁도 분석한다”…가상사례로 본 디지털 법률플랫폼 부상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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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후 전신마비가 된 피해자가 손해배상금 10억원을 가족에게 맡겼다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가상 사례는, 의료사고와 교통사고 보상 체계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거액의 손해배상금과 보험금은 원래 피해자의 장기 치료와 재활, 생계 보호를 위한 안전망이어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가족 간 신뢰에만 의존한 관리가 반복되며 재정적·법적 보호 장치가 사실상 부재한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료데이터와 법률정보, 금융기능을 결합한 AI 기반 디지털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업계는 의료·보험·법률의 경계를 넘는 이른바 디지털 헬스·레그테크 융합이 향후 손해배상 관리 시장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례 속 피해자는 전문직으로 일하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고, 보험금과 손해배상금을 합쳐 10억원을 수령했다. 장기 치료와 향후 의료기술 발전에 대비하자는 취지로 이 자금을 가족과 상의해 부모에게 일괄 위탁했지만, 8년 뒤 해당 자금은 토지 매입, 단독주택 건축, 차량 구입, 동생 도박 빚 상환 등으로 대부분 소진됐다. 정작 피해자는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으로 통증 치료조차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설정이다. 법률 전문가가 이런 경우 횡령 소지가 있고 민사소송으로 반환 청구가 가능하다고 지적하듯, 손해배상금 관리 과정에 투명한 기록과 제3자의 감시 기능이 부재한 점이 핵심 문제로 떠오른다.

이 지점에서 IT·바이오 업계가 개발 중인 AI 기반 손해배상 관리 플랫폼의 역할이 부각된다. 의료정보와 법률 규정을 동시에 읽어들이는 알고리즘이 피해자의 손해배상금 사용 목적을 치료·재활·생활비 등으로 사전에 구조화하고, 실제 지출 내역을 실시간으로 대조해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플랫폼이 의료기록과 장애 등급, 향후 치료 예상 비용을 분석해 최소 필수 치료 재원을 예측하고, 이 금액은 자동으로 별도 계정에 묶어 두도록 설계할 수 있다. 나머지 자금 사용에 대해서도 가족 간 차용·증여·투자 등 법적 성격을 계약 형태로 디지털화해 두면, 사후 분쟁 시 객관적 증거로 활용되며, 무단 사용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이번과 같은 장기 장애 사례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핵심 인프라가 된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전자의무기록과 재활 데이터, 통증 관련 진료 기록, 영상검사 결과 등을 클라우드 상에 통합 저장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장기 치료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구조다. 의료 AI는 환자의 장애 진행 경과, 합병증 발생 위험, 재활 효과를 예측해 10년 이상 장기적인 의료비와 돌봄 비용을 산출한다. 이렇게 계산된 수치를 기반으로 금융·보험 모듈이 맞춤형 신탁 상품이나 관리형 계좌를 설계하고, 법률 모듈은 필수 치료비 미만으로 재원을 축내는 거래에 자동 경고를 띄우는 형태다. 기존에는 의료진·변호사·재무설계사가 개별적으로 수행하던 업무를 통합 알고리즘이 보조하는 구조로 업계는 설명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교통사고와 의료사고 분야에 특화된 리걸테크와 인슈어테크 플랫폼 경쟁이 시작됐다. 미국과 유럽 일부 보험사는 교통사고 피해자의 의료데이터와 청구 내역을 AI로 검증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손해배상금의 장기 운용을 지원하는 디지털 신탁 서비스를 연계하는 방향으로 사업 모델을 확장하고 있다. AI가 사고 유형·장애 정도·과거 유사 판례를 패턴 분석해 합리적인 합의금 수준과 최적의 지급 구조를 제시하고, 이후 자산 관리 단계까지 이어가는 방식이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장애인 장기 돌봄 재원을 별도 계좌로 묶고, 지정된 지출 카테고리 안에서만 사용되도록 제한하는 디지털 신탁 서비스가 잇따라 등장해 고령화 사회의 재정 리스크 대응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의료 AI와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연계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지만, 손해배상·보험금 활용처럼 의료·법률·금융이 겹치는 영역에서는 아직 제도적 공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규제 체계는 개인정보보호와 의료정보 비식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환자의 동의를 전제로 의료데이터를 법률·금융 알고리즘과 결합해도 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정교하지 않다. 금융 규제 측면에서는 AI가 제안하는 자산 배분과 법률·의료 판단 간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소비자 보호 책임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 등 쟁점이 남아 있다. 디지털 헬스 데이터가 손해배상 제도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경우, 알고리즘 편향과 오류, 데이터 누락이 피해자의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 있어, 감시와 검증 체계도 필수 요소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AI와 디지털 플랫폼이 가족 간 분쟁과 재정 착취를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피해자의 법적 권리를 미리 구조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 의료·법률 IT 업계 관계자는 장기 장애 환자의 손해배상금은 사실상 평생 치료와 생계의 lifeline에 해당한다며, 의료데이터와 법률정보, 금융 알고리즘을 결합한 관리 시스템이 상용화된다면 유사한 분쟁 발생 가능성을 상당 부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계는 장애와 중증질환 환자를 위한 디지털 헬스·레그테크 융합 솔루션이 실제 제도 안으로 편입될지, 그리고 규제와 윤리 기준을 어떻게 충족해 나갈지 주시하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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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법률플랫폼#디지털헬스케어#손해배상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