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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책, 그리고 산사”…부산을 걷는 느린 여행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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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책, 그리고 산사”…부산을 걷는 느린 여행의 온기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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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산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바다만 바라보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구불구불한 책골목을 걷고, 천년 고찰의 그늘 아래 서성이는 시간이 부산 여행의 일상이 됐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 속에는 일상을 한 박자 늦추고 싶은, 달라진 여행의 감각이 스며 있다.

 

흐린 하늘이 드리운 9월의 부산. 남풍이 살랑이고, 도시 전체엔 해풍이 감미롭게 스민다. 송도해상케이블카는 하늘 위에서 바다를 내려보며 한 걸음 느리게 가는 시간을 선물한다. 해발 86m 상공에서 굽이치는 해안을 조망하는 동안, 탑승객들은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고, 바깥 풍경과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게 된다. 케이블카 하부의 다이노어드벤처와 어린왕자 테마존은 또 다른 감각의 쉼표. 부모와 아이들은 이곳에서 눈높이를 맞추며 가족만의 추억을 쌓아간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부산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부산

도시 한 켠, 범어사는 오랜 세월 흐름을 품은 채 묵묵히 계절을 맞는다. 7세기 신라의 숨결이 담긴 이 고찰은 요란한 번화가와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닌다. 나무 계단을 오르다 보면 불현듯 숲 냄새가 스며들고, 대웅전 앞에선 묵음의 공기가 마음에 깃든다. 봄의 벚꽃, 가을의 단풍 같은 진경을 만나려 일부러 이 길을 찾는 이들도 많다.

 

보수동책방골목은 부산 중구의 숨겨진 명소다. 빼곡히 쌓인 책더미 사이에서 오래된 표지의 단서, 누군가의 기억이 밴 책갈피를 만지는 순간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록에 따르면 희귀서적 수집에 나서는 이들도, 잠시 골목을 가로질러 삶의 느린 리듬을 경험하려는 여행객도 해마다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산의 매력은 해양 도시라는 명확한 풍경 너머, 시간을 걷는 경험에 있다”고 조언한다. 도심과 자연,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각자만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롭다. “송도 위 케이블카를 탈 땐 모든 고민이 바다에 가라앉는 기분”, “책방골목에선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다녔던 시간이 떠오른다”는 사연들이 이어진다. 휴대폰 카메라로 골목 풍경을 기록하고, 산사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나만의 순간을 곱씹는 풍경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결국 지금 부산에서 걷는 이 길들은 트렌드가 아닌, 각자의 일상과 감정이 교차하는 작은 쉼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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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송도해상케이블카#범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