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산사의 기운”…가을 경주 석굴암, 천년의 지혜와 만남
가을, 경주를 걷는 사람이 늘었다. 예전엔 역사 공부의 현장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경주는 여유와 영감이 흐르는 여행자의 일상이 됐다. 천년의 풍경 속에서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만한 계절, 바쁜 마음은 어느새 잠잠해진다.
요즘 SNS에서는 석굴암 인증샷이 자주 올라온다. 절벽 위 산사에서, 신라의 숨결을 느끼며 천천히 걷다 보면 ‘나만의 가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석굴암을 찾은 여행자 박선영(36) 씨는 “웅장한 대불 앞에서 오래 묵은 근심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반면 저녁이 되면 읍성 야경을 바라보며 라운드투에서 미식을 즐기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곳곳에 멈춰 선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경주를 찾는 30~40대 방문객 비율이 매년 오르고 있다. 단체 관광 대신 혼자 혹은 소규모로 역사 유산을 즐기려는 여행 패턴이 확산된 영향이다. 신라의 문화유산과 젊은 감각이 공존하는 경주 곳곳은 이제 ‘취향의 도시’로 진화 중이다. 황룡사역사문화관에서 역사적 가치와 복원 노력에 귀를 기울이고, 불국사 인근 이중생활 와인바에서 휴식을 만끽하는 풍경이 자연스러워졌다.
여행 칼럼니스트 김지운 씨는 “경주 석굴암은 오래된 시간 위에 쌓인 지혜와 믿음을 오롯이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취향을 좇아 걷는 여행자에게는 지금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느꼈다. 전문가들은 고요함과 여백, 그리고 역사성을 담은 장소가 현대인에게 새로운 위로가 된다고 바라봤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사소한 고민은 나도 모르게 흩어진다”, “바다 위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면 고요 속에서 든든함이 밀려온다”는 경험담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채웠다. 경주의 밤을 펍에서 마무리 짓거나, 한적한 동네 와인바에서 책을 읽는 순례자들의 이야기 역시 늘고 있다.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천년의 시간 속에서 나만의 느슨한 균형을 찾는 가을.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