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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분단의 흔적 사이”…고성, 여행의 의미를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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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분단의 흔적 사이”…고성, 여행의 의미를 다시 묻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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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난 사람들 사이에서 ‘고성’이라는 이름이 다시 회자된다. 예전엔 분단의 경계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푸른 바다와 역사의 의미가 스며든 여행지의 일상이 됐다.

 

고성에서 만나는 첫 풍경은 동해의 푸름과 주름진 역사가 맞닿아 있는 통일전망대다. 현내면 해안 절경 위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망원경 너머 북한 금강산과 해금강, 그리고 DMZ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 방학이 시작되면 가족 단위 방문이 늘고, 학생들은 분단의 현실과 평화의 소망을 자연스럽게 체험한다. “저 멀리 펼쳐진 산세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묘했다”는 여행객의 고백은, 이곳만의 정서를 대변한다.

출처=포토코리아
출처=포토코리아

조용한 감흥은 화진포에서 이어진다. 16km 둘레 석호와 김일성·이승만 별장이 남긴 흔적, 그리고 나지막한 소나무 숲길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해변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달리, 호수에 배를 띄운 중년 부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고 표현했다. 화진포 해변의 포근함은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죽왕면의 송지호에서는 철새들의 자유로움과 재첩을 줍는 주민들의 일상이 교차한다. 송림 숲길 산책 후 관망타워에서 호수와 바다의 경계선을 바라보면, 복잡했던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자전거 여행자가 “가장 여유로운 바람이 분다”고 평한 이유다.

 

왕곡마을은 시간 여행의 문턱이다. 살아있는 전통 가옥과 흙내음 진한 골목길,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마을 사람들 속에서 ‘오래된 일상’의 따뜻함이 스며든다. 근래 들어 가족 단위 방문뿐 아니라, 홀로 조용한 하루를 보내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물빛 고운 아야진 해변과 청간정의 절경은, ‘관동팔경’이라는 낱말을 더 명확하게 체감하게 한다. 특히 청간정 위에서 맞이하는 동해 일출은 “가장 선명한 하루의 시작”으로 남는다는 후기가 많다.

 

명파리의 소박한 해변에서는 우리나라 최북단 여행지라는 특별함도 느껴진다. 여름 아침의 고요, 바닷바람에 눈을 감고 오래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여행의 목적이 달라진 풍경에서 비롯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비도심·경계지 여행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18% 늘었고, 자연·역사 경험을 통합한 ‘의미 있는 여정’을 선호하는 응답도 높아졌다. 트렌드 분석가는 “고성 여행의 본질은 휴식과 함께 사회적 맥락의 성찰이 함께하는 감각에 있다”라고 전한다.

 

여행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롭다. “바다와 DMZ, 자연과 역사가 만나는 공기가 다르다”, “고요함 속에서 내 삶을 돌아봤다”는 댓글이 잦다. “정해진 코스 없이 걷기만 해도 좋다”, “단순한 힐링이 아니라, 나를 타인과 세상에 비추어보는 시간이었다”는 경험도 많다.

 

결국 여행은 단지 아름다운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닌, 내면의 속도로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이란 걸 고성에서 새삼 느끼게 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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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일전망대#화진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