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의약품 포트폴리오 키운다…SK바이오팜, WT-7695 도입해 CA9 공략
방사성의약품 기술이 정밀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축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SK바이오팜이 두번째 후보물질을 확보하며 글로벌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전달하는 표적 방사성의약품은 기존 항암제 대비 정상 조직 손상을 줄일 수 있어 차세대 치료 옵션으로 주목받는다. 업계에서는 SK바이오팜의 이번 행보를 국내 제약사의 방사성의약품 사업 전면 진입을 알리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위스콘신대학 기술이전기관 WARF로부터 방사성의약품 후보물질 WT-7695의 글로벌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27일 밝혔다. WT-7695는 현재 전임상 단계에 있는 저분자 기반 방사성의약품 후보로, 암세포 표면 단백질인 탄산탈수효소9 CA9를 타깃으로 설계됐다. 업계에서는 WT-7695가 같은 타깃 계열 후보물질 중 최고 수준 성능을 목표로 한 베스트 인 클래스 잠재력을 가진 물질로 평가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첫 방사성의약품 후보 SKL35501을 도입한 뒤 미국 테라파워와 벨기에 판테라 등 글로벌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기업과 악티늄225 공급 계약을 연이어 체결하며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을 비롯한 국내 여러 기관, 기업과의 연구 협력도 병행하며 방사성의약품 사업 기반을 다졌다. SKL35501은 현재 임상 1상 진입을 위한 임상시험계획 IND 제출을 준비 중으로, WT-7695와 더불어 SK바이오팜의 방사성의약품 파이프라인 양축을 형성하게 된다.
WT-7695의 기술적 핵심은 암세포의 저산소 환경에서 과발현되는 CA9를 정밀하게 겨냥한다는 점이다. CA9는 산소가 부족한 조건에서 발현이 급증해 암세포 성장과 전이를 돕는 단백질로 알려져 있다. 특히 투명세포신세포암 환자의 약 95퍼센트 이상에서 과발현되는 것으로 보고돼 해당 암종의 대표적인 바이오마커로 꼽힌다. WT-7695는 CA9에 결합하는 저분자 구조체에 방사성동위원소를 표지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비표적 조직 노출을 최소화하고 암세포에 방사선을 집중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SK바이오팜과 WARF 측은 전임상 평가에서 루테슘177과 악티늄225 두 동위원소를 각각 부착했을 때 모두 단회 투여만으로 의미 있는 항암 효과와 안전성 신호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루테슘177은 베타선 기반 치료용 동위원소로 비교적 긴 조사 범위를 가지는 반면, 악티늄225는 알파선을 방출해 짧은 경로 내에서 높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특성이 있다. SK바이오팜은 우선 루테슘177 기반 치료제 개발에 착수하고, 향후 악티늄225를 활용한 고강도 치료 옵션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병행 검토할 계획이다. 기존 화학항암제나 면역항암제와 비교해 종양 내 표적 부위에 더 집중적으로 방사선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난치성 고형암 영역에서 차별성이 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WT-7695를 둘러싼 개발 전략의 또 다른 축은 진단과 치료를 하나의 분자 구조를 공유하는 테라노스틱스 형태로 묶는 것이다. SK바이오팜은 동일한 CA9 타깃 분자체에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 갈륨68을 결합한 영상 진단제 개발을 병행한다. 갈륨68은 양전자 단층촬영 장비인 PET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인 진단 동위원소로, 암 조직의 위치와 크기, 표적 발현 정도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회사는 갈륨68 기반 진단제와 루테슘177 치료제를 하나의 테라노스틱스 페어로 구성해, 진단과 치료를 연계하는 정밀 의료 패키지로 글로벌 시장에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세계 방사성의약품 시장에서는 이미 표적 방사성치료제와 테라노스틱스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립선암, 신경내분비종양 등을 겨냥한 루테슘177 기반 치료제가 잇달아 허가를 받아 매출을 확대하고 있고, 다국적 제약사와 핵의학 전문기업을 중심으로 악티늄225 계열 후보물질 개발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SK바이오팜이 희귀 신경계 신약 개발 경험을 토대로 방사성의약품 분야에 본격 진출한 만큼, 대형 제약사와 전문 방사선의학 기관 간 협력 경쟁도 거세질 전망이다.
방사성의약품은 고위험 의료기기와 의약품 규제가 동시에 적용되는 영역인 만큼, 각국의 인허가 기준과 안전관리 체계가 상용화 속도를 결정하는 변수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방사성의약품 품목허가와 임상시험 관리를 맡고, 방사성동위원소 취급과 운송에 대해서는 별도의 원자력 관련 규제가 적용된다. 미국 FDA 역시 테라노스틱스 제품에 대해 진단제와 치료제 각각의 임상 근거와 상호 운용성을 모두 확인하고 있어, 글로벌 임상을 준비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초기 설계 단계부터 규제 요건을 반영한 개발 전략이 필수로 여겨진다. SK바이오팜이 SKL35501의 IND 준비 상황을 병행 공개한 것도 이런 규제 환경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WARF 에릭 아이버슨 최고경영자는 이번 계약에 대해 CA9 타깃 접근법의 글로벌 확장과 세계 환자 치료 옵션 확대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WT-7695 도입을 통해 방사성의약품 포트폴리오가 한층 견고해졌다며, SKL35501의 글로벌 임상 준비와 함께 자체 신약 발굴을 통한 추가 후보물질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SK바이오팜의 연속적인 방사성의약품 투자와 공급망 선점이 향후 국내외 암 치료 시장에서 어떤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