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카자흐 원유 프로젝트 제재서 제외”…미국, 에너지 협력 유지와 대러 압박 병행

장예원 기자
입력

현지시각 기준 14일, 미국(USA) 정부가 러시아(Russia)에 대한 제재 과정에서 간접 타격을 받았던 카자흐스탄(Kazakhstan) 주요 원유 프로젝트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카자흐 원유 수출의 핵심 통로와 대형 유전이 다시 가동 불확실성에서 벗어나면서, 중앙아시아 에너지 시장과 국제 유가 안정성에 일정 부분 숨통이 트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치는 러시아 제재 강화 기조 속에서 에너지 공급 안정이라는 현실적 필요가 교차하는 맥락에서 이뤄졌다.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매체 타임스오브센트럴아시아(TCA)는 19일 보도에서 미국 재무부가 14일 카자흐스탄 원유를 러시아로 수송하는 카스피 파이프라인 컨소시엄(CPC)과 카자흐스탄 텡기즈 유전 운영사 텡기즈셰브로일(TCO), 그리고 카라차가나크 유전 사업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전했다. 이들 프로젝트는 러시아 측 지분 보유 때문에 한 달가량 간접 제재를 받아왔다.

미국, 카자흐 원유 핵심 프로젝트 제재 면제…CPC·텡기즈셰브로일 간접 제재 해제
미국, 카자흐 원유 핵심 프로젝트 제재 면제…CPC·텡기즈셰브로일 간접 제재 해제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러시아 대형 석유기업 루코일(Lukoil)과 로스네프트(Rosneft) 및 이들 기업의 34개 자회사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그 여파로 루코일 등 러시아 기업이 지분을 가진 CPC와 TCO, 카라차가나크 프로젝트가 금융·거래 측면에서 제약을 받기 시작했고, 카자흐스탄 에너지 부문 전반에 불확실성이 확산됐다. 현지 업계에서는 원유 수출 차질과 외국인 투자 심리 위축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번에 미국 정부가 CPC와 TCO, 카라차가나크 사업에 대한 간접 제재를 해제하면서 카자흐스탄 측 사업 운영은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됐다. 다만 미국은 이들 프로젝트에서 카자흐스탄 관련 지분을 매각하거나 다른 주체로 이전하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기로 하며, 러시아 측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장치를 남겼다. 대러 제재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글로벌 공급망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절충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CPC 송유 시스템은 카자흐스탄 서부와 일부 러시아 지역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를 러시아 흑해 연안 노보로시스크 해양 터미널까지 수송하는 핵심 인프라다. 카자흐스탄 수출 원유의 80% 이상이 이 송유관망을 통해 해외로 반출되고 있어, CPC 운영 차질은 곧바로 국제 시장 공급 감소와 연결될 수 있다. CPC에는 카자흐스탄 기업 2곳이 20.75%를 보유하고, 미국 에너지기업 셰브런(Chevron)의 자회사 셰브런 카스피 컨소시엄 컴퍼니가 15%, 루코일 자회사 루코일 인터내셔널 GmbH가 12.5%를 각각 보유하는 등 다국적 에너지 기업이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

 

텡기즈셰브로일은 셰브런이 50%, 엑손모빌(ExxonMobil) 계열 엑손모빌 카자흐스탄 벤처스가 25%, 카자흐스탄 국영 석유기업 카즈무나이가스(KazMunayGas)가 20%, 루코일이 5%를 보유한 합작 구조로 운영된다. 텡기즈 유전은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초대형 유전으로 추정 원유 매장량이 31억 톤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돼 왔으며, 제재 수준과 적용 범위가 국제 원유 공급 안정성과 직결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카라차가나크 유전 역시 세계 최대급 유전 가운데 하나로, 영국(Britain) 에너지기업 셸(Shell)과 이탈리아(Italy) 에너지기업 에니(Eni), 셰브런, 루코일, 카즈무나이가스 등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 기업과 국가 구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제재 적용 여부가 곧 주요 산유국과 서방 메이저 기업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주는 사업으로 꼽힌다. 이번 간접 제재 해제는 이러한 다국적 이해를 감안한 결정으로도 해석된다.

 

현지 전문가들은 CPC와 텡기즈, 카라차가나크 등 카자흐스탄 핵심 에너지 프로젝트가 미국 제재에서 벗어나면서 카자흐스탄 원유 부문과 거시경제가 일정 수준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카자흐스탄 경제 구조상, 주요 프로젝트의 제재 여부는 재정 수입과 환율, 투자 유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유럽(Europe)과 아시아(Asia)로 향하는 원유 수송이 중단될 경우, 유가 변동성과 에너지 안보 우려가 재차 증폭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카자흐스탄에 대한 이번 미국의 제재 면제 조치는 외교적 맥락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달 초 이스라엘(Israel)과 인근 무슬림 국가 간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하는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Bahrain), 수단(Sudan), 모로코(Morocco)가 2020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 1기 당시 이스라엘을 공식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한 합의를 가리킨다.

 

카자흐스탄의 협정 가입은 미국과의 외교·안보 및 경제 협력 강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중앙아시아 핵심국이자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이 미·러·중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추구하는 가운데, 미국과의 협력 채널을 한층 공고히 하려는 행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카자흐스탄이 친서방 외교의 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에너지 인프라 보호를 위한 일정 수준의 배려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과 유럽 주요 매체들은 이번 조치를 대러시아 제재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에너지 시장 충격을 완화하려는 현실적 선택으로 보는 분위기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Ukraine) 전쟁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 왔지만, 중앙아시아와 중동(Middle East)에서의 안정적인 원유 공급은 여전히 중요 과제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카자흐스탄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제재 면제가 당장 국제 유가 급등을 막는 완충 역할을 할 것으로 보면서도, 러시아 제재와 에너지 안보 사이에서 서방의 줄타기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아울러 카자흐스탄이 아브라함 협정 가입을 계기로 미국 및 중동 산유국과 협력 폭을 넓힐 경우, 중앙아시아의 에너지·외교 지형에도 점진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사회는 이번 제재 면제 조치가 향후 대러 제재 기조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장예원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미국재무부#카자흐스탄#카스피파이프라인컨소시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