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밤, 시간이 흐른다”…서울 궁중문화축전에서 만나는 전통의 재발견
사직로를 따라 걸으면 고요한 시간의 흐름이 발끝에 스민다. 요즘 서울 도심에서는, 고궁과 전통문화를 더 가까이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교과서 속 이야기’라 여겼던 궁궐과 그 풍경이, 이제는 세대와 취향을 아우르는 일상의 축제가 됐다. 서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그리고 종묘를 무대로 펼쳐지는 ‘궁중문화축전’이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현장에서는 저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시민들이 궁궐 돌담길을 따라 카메라에 풍경을 담고, 아이 손을 잡고 고궁의 정원을 거니는 가족도 여럿 보인다. SNS에서는 이미 ‘#궁중문화축전’ 해시태그가 연일 오르고, 음악회와 한복연향 인증 사진이 봄밤을 물들인다. 경복궁에서는 ‘시간여행, 세종’ 체험이, 근정전 마당에서는 100인의 연주자가 함께하는 밤의 고궁음악회가 관객의 숨결을 오래도록 남긴다. 전통 공예와 토속 먹거리는 물론,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와 체험마당, 인문학 콘서트까지 이어진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고궁 방문객 수가 매년 증가 추세다. 전통문화 콘텐츠 시장도 MZ 세대를 중심으로 성장하며, 한복 대여 이용률·관련 굿즈 판매량이 함께 오르고 있다. 현장 관계자는 “참여자 연령대가 예년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다”며 “일상을 벗어나 옛 시간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하는 시민이 많다”고 전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런 움직임이 단순한 유행이 아닌, 도심 속에서 삶의 주체로서 전통을 체감하고 재해석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한다. 문화사회연구자 김윤지 씨도 “전통의 본질은 끊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 연결된다”며 “궁궐에서의 체험은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누릴 수 있는 현재의 경험”이라 표현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한복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 “예전엔 궁궐 안 가봤는데 이젠 매년 기다리게 된다”라는 공감의 목소리부터 “도심에서 이렇게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새로운 행복”이라는 메시지가 이어진다. 함께 걷는 순간, 가족과 친구 간 나누는 대화도, 익숙한 시간표에서 벗어난 나만의 여유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궁중문화축전은 단순한 전통 체험을 넘어서 삶의 리듬을 다독이는 축제가 돼가고 있다. 도시의 중심 한복판, 수백 년 지층을 가진 궁궐의 고요와 생동이 천천히 우리 곁으로 스며든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