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환기 푸른 점화, 뉴욕 경매장에서 다시 빛나다→한국 미술 기록의 문턱에 서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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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심연을 닮은 캔버스 한가운데, 점과 점들이 끝 모를 깊이로 확장되는 풍경은 경계 없는 우주 그 자체였다. 김환기라는 이름과 함께 세계 미술 시장의 시선이 머무는 순간, 결코 돌아오지 않을 한국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이 틔는 곳에서 시간은 은밀히 흐르고 있었다.

 

크리스티 뉴욕이 오는 11월 17일 ‘20세기 이브닝 세일’을 통해 김환기의 1971년작 ‘19-VI-71 #206’을 출품한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약 750만에서 1000만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104억에서 142억 원의 경이로운 추정가를 품고 등장한다. 2019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132억 원에 낙찰된 ‘05-IV-71 #200(우주)’의 기록을 넘어설지, 한국 미술 최고가 역사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출처=크리스티 코리아
출처=크리스티 코리아

푸른 점들이 한결같이 공간을 가만히 채우고, 캔버스 하단을 감싸는 에메랄드빛은 미지의 세계로 관람자를 부드럽게 이끈다. 뉴욕 시기 대표작인 ‘19-VI-71 #206’에는 점, 선, 색채의 리듬 속에서 존재와 우주를 탐구한 김환기의 평생 열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무엇보다 하늘과 바다, 존재와 사라짐 같은 근원적 물음이 조용히 울려 퍼진다.

 

이번 출품은 김환기가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크리스티 뉴욕 ‘20세기 이브닝 세일’ 무대에 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샤갈, 피카소, 조안 미첼, 데이비드 호크니 등 걸출한 세계 거장들과 나란히 같은 밤을 밝힐 김환기의 이름은, 이제 경계를 넘어 세계 미술 무대에서 울려 퍼진다. 이학준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는 “김환기 선생이 세계를 향해 교수직을 내려놓고 뉴욕에서 작업을 이어갔던 용기와 삶이 이 순간을 가능케 했다”고 이야기했다. 에밀리 카플란 크리스티 공동 헤드도 “가장 중요한 시기의 김환기 걸작을 마키 위크의 문을 여는 첫날 선보이게 돼 뜻깊다”고 전했다.

 

얇은 바람이 스치는 듯한 점의 진동, 깊고 푸른 밤처럼 무한을 가리키는 화면은 김환기의 미학과 함께 20세기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대형 전면점화 시리즈는 생애 마지막까지 그의 영혼이 머물던 집이었으며, 1971년작 대형 캔버스는 30점도 채 남지 않아 예술적 희소성과 내면적 울림 모두를 아우른다.

 

크리스티 뉴욕 이브닝 세일은 11월 17일 펼쳐지며, 김환기의 푸른 점화 역시 그 밤의 일부가 된다. 이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기록이 새로이 쓰일지, 깊어가는 계절의 끝자락에서 관람자들은 또 한 번 김환기라는 이름에 서서히 잠기게 될 것이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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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크리스티뉴욕#19-vi-7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