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만리터 생산체제”…셀트리온, 美공장·국내 4조 투자로 바이오 패권 노린다
바이오의약품 생산 기술과 파이프라인 투자가 동시에 확대되며 바이오 산업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 셀트리온은 미국 현지 생산기지 인수와 대규모 증설, 국내 4조원 투자 계획을 공개하며 글로벌 관세 리스크를 줄이고 고부가가치 CMO와 바이오시밀러, 비만신약 사업 확장을 예고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미국 중심 글로벌 생산 거점 경쟁과 차세대 비만 치료제 시장 선점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셀트리온은 19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미국 공장 인수와 증설에 총 1조4000억원, 국내 생산시설 확충에 4조원 등 대규모 설비 투자를 공식화했다. 미국 투자 1조4000억원 가운데 7000억원은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생산 시설 인수 및 운영에, 나머지 7000억원은 증설에 배정된다. 해당 시설은 9월 일라이릴리로부터 인수 계약을 체결한 곳으로, 셀트리온은 연내 인수를 마무리한 뒤 즉시 캐파 확장에 착수한다.

브랜치버그 공장은 초기 설비에 더해 1차로 3년에 걸쳐 1만1000리터 배양기 3기를 추가 설치하고, 이후 미국 내 수요에 맞춰 2차로 동일 규모 3기를 더해 총 6만6000리터를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증설한다. 배양기는 세포를 이용해 항체 등 단백질 의약품을 생산하는 핵심 설비로, 리터 수가 곧 대량 생산 능력을 의미한다. 관세 부담 없이 미국 내에서 직접 생산해 공급하는 구조가 확보되면 마진 개선과 공급 안정성이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서도 4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가 병행된다. 송도 캠퍼스 내 건설 중인 액상 완제의약품 공장에 더해 인천 송도에 신규 원료의약품 공장, 충남 예산에 신규 완제의약품 공장, 충북 오창에 사전 충전형 주사기 전용 생산공장을 조성하는 계획이다. 원료의약품 공장은 세포 배양과 정제 공정이 중심이 되는 대규모 바이오 원료 생산 설비이며, 완제의약품 공장은 충전·포장 공정까지 포함해 제품 출하 직전 단계까지 일괄 수행하는 인프라다. 사전 충전형 주사기 공장은 투약 편의성과 감염 위험 감소 장점을 가진 주사기 일체형 제형 수요 확대에 대응하는 시설이다.
서정진 회장은 2030년을 전후해 기존 생산능력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는 18만리터 규모 증설이 필요하고, 위탁개발생산을 포함한 CDMO 사업을 본격화하려면 36만리터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액상 완제 공장 증설까지 감안하면 국내 생산시설 확충에만 약 4조원이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대규모 투자를 국내와 해외에 분산함으로써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핵심 사업 축인 바이오시밀러 포트폴리오도 공격적으로 넓힌다. 셀트리온은 이미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허가를 받은 11개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2038년까지 총 41개 바이오시밀러를 출시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 중 2030년까지는 키트루다, 코센틱스, 오크레부스, 다잘렉스 등 글로벌 매출 상위권에 있는 블록버스터를 포함해 신규 바이오시밀러 7개를 추가 상업화해 총 18개로 늘릴 계획이다. 2038년까지 연평균 2개에서 3개 수준의 신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셈이어서 생산 캐파 확대와 직접 연결된다.
항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약 개발도 속도를 높인다. 항체 약물접합체는 암세포만 표적해 독성 약물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기존 항암제 대비 부작용을 줄이고 효능을 높이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꼽힌다. 셀트리온은 올해 임상 단계에 진입하는 4개를 포함해 10종 이상의 항체 약물접합체와 다중항체 후보물질을 확보했고, 2027년까지 총 20종으로 파이프라인을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다중항체는 두 개 이상 항원을 동시에 겨냥해 치료 효율을 높이는 구조로, 복합 질환 대응에 유리하다는 평가도 있다.
비만 치료제 파이프라인은 차세대 GLP 1 계열을 넘어서는 전략을 예고했다. 현재 글로벌 시장의 주류는 GLP 1, GIP 등 두세 가지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해 식욕 억제와 혈당 조절을 돕는 2중, 3중 작용제 형태다. 셀트리온은 여기서 한 단계 진화한 4중 작용제 모델로 비만 치료제 CT G32를 개발 중이다. 4중 작용제는 네 종류의 호르몬이나 수용체를 동시에 겨냥해 지방 분해, 식욕 억제, 에너지 소비 증가, 인슐린 분비 개선 등을 복합적으로 유도하는 개념이다.
서 회장은 주사형 위주인 현재 비만 치료제가 장기적으로 경구 제형으로 이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GLP 1 기반 주사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근손실 부작용을 줄이고, 환자가 복용하기 편한 경구용 형태로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CT G32는 지방 분해 촉진과 체중 감소율을 최대 25퍼센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며, 기존 제품 대비 효능 우위와 근육 감소 최소화를 동시에 노린다. 내년 전임상 진입을 예고한 만큼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서 가치가 부각된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적 측면에서는 4분기를 기점으로 뚜렷한 턴어라운드를 자신했다. 서 회장은 직전 분기 대비 최소 30퍼센트 이상 성장한 매출과 30퍼센트대 중반의 매출원가율, 40퍼센트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예상했다. 미국 공장에서 일라이릴리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CMO 계약이 마무리되면, 초기 투자 부담에도 불구하고 운영상 원가 압박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브랜치버그 공장을 좋은 조건에 인수했다며 4분기부터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견줄 만한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셀트리온은 현재 판매 중인 11개 바이오시밀러를 제외하고도 향후 13년 동안 연평균 2개에서 3개를 추가 출시해 총 30개의 고수익 바이오시밀러를 더하는 로드맵을 세워두고 있다. 바이오시밀러의 꾸준한 상업화는 현금창출력을 높여 ADC와 비만 치료제 같은 신약 연구개발에 재투자되는 구조를 만든다. 파이프라인 다각화와 생산 인프라 확충이 실적 턴어라운드 전략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대형 제약사와 CMO 기업 간 생산거점 확보 경쟁이 이미 본격화된 상황이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도 인건비와 규제 환경을 앞세워 바이오 생산 허브를 노리고 있다. 미국 현지 공장을 확보한 셀트리온이 관세와 물류 리스크를 줄이고 다국적 제약사 CMO 수주 경쟁에서 얼마만큼 우위를 확보할지가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서 회장은 현재 추진 중인 인수합병도 연내 성사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구체적인 대상과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M&A를 통해 파이프라인 보강이나 지역 판매망 확대 등 전략적 보완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업계는 대규모 설비 투자와 공격적 파이프라인 확장 계획이 실제 실적과 현금흐름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