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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약자 정보격차 줄인다"…KCA, 보조설비 관리체계 구축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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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보조설비를 중심으로 한 청각 보조 기술이 공공서비스 접근성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방송 안내와 비상 경보 등 음성 기반 정보 전달 비중이 커진 가운데, 청각약자를 위한 설비 설치와 사후 관리가 새로운 공공 ICT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업계와 공공부문에서는 청취보조설비 품질 관리와 표준 제도화를 놓고 향후 접근성 기술 산업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KCA은 22일 청각 보조 기술 기업 히어사이클, 청각장애인생애지원센터와 청각약자 편의 증진 및 포용적 청취환경 조성을 위한 3자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공공시설 안내방송 청취 불편과 청취보조설비 설치 의무화 확대 등 청각 접근성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기술과 정책, 현장 데이터를 결합한 종합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청취보조설비는 공공장소 음성 정보를 보청기, 전용 수신기, 스마트폰 등으로 직접 전달해 음성 인식률을 높이는 시스템을 뜻한다. 무선주파수 기반 시스템이나 유도루프 방식 같은 전파 기술과 음향 신호 처리 기술이 결합된 구조로, 단순 음량 증폭이 아니라 잡음 감소와 명료도 확보를 목표로 한다. KCA는 전파 분야 전문기관으로서 설비 설치 이후에도 간섭 신호와 출력, 주파수 안정성 등을 점검할 수 있는 기술 검증 체계를 담당해, 기존에 설치만 이뤄지고 사후 관리가 부족했던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방침이다.

 

협약의 핵심은 설치와 유지관리 전 주기에 걸친 품질 관리 체계 구축이다. 3개 기관은 청취보조설비 설치와 운용 관련 기술 자문과 성능 검증을 공동 수행하고, 지역 사회 시설을 대상으로 실증 사업을 추진해 확산 모델을 발굴하기로 했다. 실증 과정에서 설비 성능, 이용 편의성, 장애 유형별 청취 환경 데이터를 축적해 향후 표준과 정책 제안의 근거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역할 분담도 구체적이다. KCA는 주파수 활용, 전파 간섭 관리, 신호 세기와 음질 측정 같은 기술 검증과 함께 제도화 기반 연구를 주도한다. 히어사이클은 실제 청각장애인 사용자와 시설 관리자의 의견을 모아 수요 분석과 현장 실증 운영을 맡는다. 청각장애인생애지원센터는 청각학, 재활, 보조공학 관점에서 학술 자문을 제공해, 설치 의무화와 성능 기준 등 제도 개선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국내에서는 공항, 철도역, 관공서 등 일부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청취보조설비가 도입됐지만, 고장 방치나 음질 저하, 표지 부족 등으로 실제 이용률이 낮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특히 배선 구조나 전파 설정이 적절하지 않으면 보청기 사용자의 피드백 음이나 하울링이 발생해 설비가 있어도 사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보고돼 왔다. 이번 협력은 설치 단계뿐 아니라 이후 주기적 점검과 유지보수, 사용자 교육까지 포괄하는 운영 모델을 만들겠다는 데 의미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청각 접근성 기술을 디지털 인프라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북미와 유럽 주요 공항과 공연장은 국제 표준에 맞춘 청취보조설비 설치와 함께 정기 점검, 이용 안내 고지 의무를 병행하고 있다. 일본도 철도역과 공공청사 중심으로 유도루프와 FM 보조청취 시스템을 확장하는 추세다. 국내에서 KCA와 민간, 지원기관이 결합한 3자 모델이 정착할 경우, 장애인 접근성 설비를 위한 운영 가이드라인과 성능 기준 마련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활용 범위는 공공시설을 넘어 민간으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 대형 유통 매장, 문화시설, 의료기관, 기업 콜센터 현장까지 청취보조설비 수요가 확대될 경우, 관련 장비와 소프트웨어 시장이 새로운 접근성 ICT 분야로 성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실제 보급 속도는 설비 설치 비용과 운영 인력 역량, 제도적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3개 기관은 이번 협약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축적해, 장기적으로는 청취보조설비 성능 기준과 설치 기준, 통합 관리 지표 등을 담은 표준과 정책 제안으로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정기 협의체를 운영해 현장 애로사항과 기술 트렌드를 공유하고, 홍보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시설 관리자와 이용자 인식을 높이는 작업도 병행한다.

 

이상훈 KCA 원장은 이번 협약이 청각약자의 정보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하며, 기술과 현장, 전문성을 결합한 협력 체계를 통해 지역 사회 전반으로 확산 가능한 청각 접근성 모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와 공공부문은 새 관리 체계가 실제 설치 현장에 안착해 청각약자의 정보 격차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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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a#히어사이클#청각장애인생애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