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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속 고석정과 삼부연폭포 산책”…철원의 잔잔한 역사와 자연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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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속 고석정과 삼부연폭포 산책”…철원의 잔잔한 역사와 자연에 잠기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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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내린 흐린 날, 철원을 찾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예전엔 전쟁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면, 이제는 빗물 적신 한탄강과 고즈넉한 산사를 일상처럼 걷는 시간이 되고 있다. 작고 사소한 여행지 선택이지만, 그 안엔 삶을 천천히 음미하려는 여유가 깃들었다.

 

철원에서 가을은 유독 깊다. 9월 중순, 20도를 웃도는 기온과 높아진 습도, 60%라는 강수확률이 어울려 대지는 첩첩이 젖고, 강가에는 물안개가 일렁인다. SNS에는 “오늘 철원 산책 인증”이라는 글과 함께 흐린 풍경을 담은 사진이 늘고 있다. 직장인 김희진(34)씨는 “조용히 걷고 싶어 철원을 찾았다. 비나 흐린 날씨가 자연을 더 진하게 느끼게 했다”고 고백했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철원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철원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여행업계와 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자연경관·역사체험 여행지로의 ‘저강도’ 여행 선호도가 2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코로나 이후 한적한 산책로와 작은 사찰을 선택하는 ‘가치 여행’ 흐름이 강해졌다. 철원군에 위치한 고석정, 삼부연폭포, 도피안사는 그 상징적 장소로 꼽힌다.

 

고석정은 한탄강 한 가운데 우뚝 솟은 높이 10m의 암석이 특징이다. 전설 속 신라 진평왕 정자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조선 의적 임꺽정의 자취가 남아있다. 흐린 날 바위와 물안개가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닮았다. “비 오는 날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기분이 들어 특별했다”는 방문객 감상도 이어졌다.

 

삼부연폭포는 세 번 구부러지는 듯한 물길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화가들이 그리려 했던 진경산수의 정수가 바로 그것이다. 도심을 떠나 폭포 소리를 들으며 걷는 순간, ‘조금 멀리서 내 일상을 바라보는’ 휴식과도 같다고 느낀다고 한다.

 

도피안사의 산사도 빼놓을 수 없다. 국보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화강암석탑 등 오래된 문화유산이 빗속에 더욱 고즈넉해진다. 한 여행객은 “사찰을 걷다 보면 빗소리와 고요 사이에서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 내리는 날의 여행은 감각을 열어주는 특별한 리셋의 시간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괜히 마음이 울적할 때 철원을 간다”, “폭포 소리에 잠시 머물다 오면 삶이 눅눅하면서 부드러워진다” 같은 공감이 이어진다. ‘굳이 맑은 날 아니어도 괜찮다’는 문장이 이젠 자연스럽다.

 

작고 사소한 여행지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리듬은 그 속에서 천천히 바뀌고 있다. 떠나야 비로소 돌아볼 수 있는 자기만의 계절, 철원에서 만나는 가을비가 오늘도 누군가의 안식이 되고 있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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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고석정#삼부연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