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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환자관리 플랫폼 각축전…제약·빅테크, 헬시 에이징 선점 나선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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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확산이 맞물리면서 병원 밖에서 환자를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의료 산업의 새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질환별 특화 앱과 플랫폼이 환자의 자가 관리와 약물 복용, 원격 모니터링을 맡으면서 의료 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환자 관리 중심 디지털 헬스케어가 향후 건강노화, 이른바 헬시 에이징 시장의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제약사와 빅테크, 대기업이 일제히 시장 선점에 나선 상황으로 본다.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한국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24년 약 246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질병 타깃 기반 서비스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단순 운동·다이어트 앱을 넘어 특정 질환 환자의 경과를 추적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경쟁 구도가 이동하는 모습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특정 질환을 겨냥한 앱 수는 2021년 약 2800개에서 2024년 8217개 이상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디지털 환자관리 서비스의 기술적 기반은 모바일 앱과 클라우드, 인공지능을 결합한 데이터 플랫폼이다. 스마트폰으로 입력되거나 웨어러블 기기에서 수집된 혈당, 심박수, 수면 패턴, 약 복용 시간 등 생활 데이터가 클라우드에 실시간으로 축적되고, AI 알고리즘이 이를 분석해 상태 변화를 감지하거나 생활습관 개선을 제안하는 구조다. 기존의 일회성 진료 기록 중심 관리가 아닌, 연속적인 데이터 기반 관리로 전환되면서 질환 악화를 조기에 감지하고 재입원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이번 흐름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형 제약사가 환자와의 접점을 직접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는 지난해 성인 만성질환 및 감염병 환자를 위한 통합 서비스 화이자포올을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AI 기반 건강 질의응답 기능과 보험·비용 지원, 처방약 배송까지 연계해 만성질환 환자의 정보 탐색과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단순 복약 알림을 넘어 치료 여정을 통합 관리하는 구조로, 제약사가 데이터와 환자 경험을 직접 관리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바이엘은 Age Factor Ecosytem을 통해 한발 더 예방 중심 관리로 나아가고 있다. 생활습관 데이터를 분석해 심혈관·대사질환 위험도를 평가하고, 맞춤형 영양제와 운동·수면 가이드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노화와 함께 증가하는 만성질환을 조기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헬시 에이징 시장에서 장기 고객을 확보하려는 플랫폼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모델은 단기 처방제 중심에서 장기 건강관리 서비스로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글로벌 제약사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국내에서도 질환 특화 환자관리 앱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SK바이오팜의 ZERO는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발작 이력과 복약 내역을 기록하고 통계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환자가 스스로 발작 양상과 빈도를 정리하기 어려웠던 기존 환경과 달리, 앱을 통해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축적되면서 의료진 진료에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실시간 데이터 연동 기능까지 더해지면 향후 발작 패턴 분석과 위험도 예측 같은 고도화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셀트리온은 2022년 장 질환 관리 앱 과장님 케어를 출시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가 일상에서 겪는 복통, 설사 등 증상을 기록하고 식단과 약 복용 내역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환자는 앱에서 질환 리포트를 확인하며 자신의 상태 변화를 이해할 수 있고, 의료진은 보다 정밀한 진료에 참고할 수 있다. 증상이 들쭉날쭉해 진료실에서 설명이 어려웠던 소화기 질환의 특성을 디지털 기록으로 보완해주는 셈이다.  

 

건강관리 플랫폼 기업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GC케어의 어떠케어는 영양 상태 분석을 기반으로 맞춤형 제품을 추천하고 종합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다. 단일 질환 치료보다는 생활습관 관리와 예방 중심에 가까운 서비스로, 기업 건강검진과 연계한 B2B 수요까지 겨냥하고 있다. 검진 결과 데이터와 일상 건강 데이터를 결합할 경우 향후 정밀 예방의료로 확장될 여지가 크다는 평가가 국내 업계에서 나온다.  

 

빅테크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카카오헬스케어는 AI 기반 모바일 건강관리 솔루션 파스타를 운영 중이다. 연속혈당측정기를 연동해 실시간 혈당을 체크하고, AI가 추천하는 맞춤 프로그램을 통해 당뇨 관리 전략을 제안한다. 9월에는 한국 노보 노디스크제약과 협력해 비만 치료제 처방 환자 대상 지원 프로그램을 파스타 앱에 연결하기로 했다. 이 협력으로 비만 환자는 약물 치료뿐 아니라 장기적인 체중과 전반적 건강관리를 앱을 통해 병행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환자 지원 프로그램과 디지털 치료제, 원격 모니터링이 빠르게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일부 당뇨·심부전 환자에 대해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 비용이 보험으로 보전되고 있고, 유럽에서는 만성질환 관리 앱이 디지털 건강 애플리케이션 제도 아래 처방과 비용 보상 대상이 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흐름이다. 한국의 경우 아직 디지털 환자관리 서비스 상당수가 건강보험 지원과 분리돼 있어, 실제 병원 진료와의 연계와 수익 모델 측면에서 제도적 뒷받침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데이터 보호와 의료 규제 역시 향후 산업 확장에 영향을 줄 요인으로 꼽힌다. 환자관리 앱이 민감한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만큼, 개인정보 보호 법제와 의료정보 비식별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동시에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여부에 따른 규제 기관 심사 범위도 서비스 개발 전략에 큰 변수가 된다. AI 알고리즘이 치료나 진단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우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 분류될 여지가 있어, 식품의약 관련 규제 당국의 허가 절차와 안전성 검증이 필수다.  

 

업계는 환자관리 중심 디지털 헬스케어의 확산이 장기적으로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박소영 한국아이큐비아 상무는 최근 열린 아이큐비아 인사이트 포럼에서 인구 고령화로 디지털 헬스케어 중심 건강노화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며 환자 관리 중심 디지털 헬스케어가 빠르게 확대되며 질병 타깃 기반 서비스 경쟁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향후 제도 정비와 데이터 신뢰 확보 수준에 따라 이런 서비스가 실제 의료 현장과 보험 시스템 속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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