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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도입 멈추자”…트럼프 약가정책에 글로벌 제약사 ‘코리아 패싱’ 심화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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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 기업들이 한국 내 신약 도입을 잇따라 늦추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최혜국 약가참조 정책’(MFN)이 가시화되면서, 미국 시장에서의 약가 정책이 실제로 한국 의약품 시장에 압박을 심화시키는 모양새다. 업계는 한국이 최저가 참조국에 포함될 경우, 국내 신약 도입 지연과 ‘코리아 패싱’ 현상이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상당수 글로벌 제약사의 한국지사는 이미 국내 시판 허가를 마친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 신청을 보류하거나, 본사에 신청을 올려도 승인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한국 약가로 신약을 판매하겠다고 본사에 보고조차 힘든 상황”이라며 “급여 등재가 미뤄지는 신약이 계속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제약 기업들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의약품 가격을 유럽 등 선진국 수준으로 낮출 것을 요구하는 MFN 정책을 강하게 추진한 바 있다. MFN 가격은 해당 제약사가 각국에 제공하는 의약품 가격 중 최저치를 뜻한다. 한국이 이 참조국군에 포함되면, 전체 의약품 시장의 1~2%에 불과한 한국 내 낮은 약가가 곧바로 미국 시장 약가 결정에 ‘기준점’이 되는 구조다.

 

실제로 한국의 브랜드 의약품 가격은 미국의 14.2%, 바이오의약품도 17.4%로, OECD 주요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 랜드코퍼레이션 자료 기준으로 한국의 평균 의약품 약가는 미국의 25.5% 선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과거에도 글로벌 신약 도입이 늦거나 아예 건너뛰는 ‘코리아 패싱’ 현상이 빈번했다. 미국제약협회(PhRMA) 분석 결과, 2012~2021년 전 세계 최초 허가 신약의 국내 1년 내 도입률은 5%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었다. 항암제,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한국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까지 평균 46개월이 소요됐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이 2018년부터 한국을 약가 참조국에 포함시키면서, 제약사들의 한국 신약 도입 기피 현상이 더 심각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한 제약사 관계자는 “한국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지만, 여기서 책정한 약가가 미국과 중국 가격까지 움직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현행 ‘이중 약가 제도’를 희귀질환 신약 외의 범위로 확대하는 방안을 임시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위험분담계약(RSA) 방식의 고가 신약은 실구매가와 고시가격이 다르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5000만 원에 구매하지만 표시가격은 1억 원으로 고시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국내 신약 도입을 이어가면서도, 타국의 약가 책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있다. 정부도 이중 약가 확대에 긍정적 입장이나, 제약계에서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크다. 현직 제약 관계자는 “이중 가격 제도는 일시적 산소호흡기에 불과하다”며 “미국 등에서 실구매가가 결국 노출될 수 있어 구조적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혁신 신약 도입을 위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제비 비율을 확대하거나, 글로벌 혁신가치를 반영하는 약가 정책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이 바로 제도 개편의 적기”라는 분석과 함께, 실제 혁신 신약 접근권과 산업 생태계의 장기적 안정성 모두를 아우르는 정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글로벌 제약사의 신약 도입 지연이 한국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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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제약사#트럼프정책#코리아패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