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치료제 포함 국가필수의약품 확대…식약처, 공급관리 고도화 나선다
난임치료제와 마취제, 면역억제제 등 의료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핵심 의약품이 국가 단위 공급관리 체계에 추가 편입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가필수의약품 지정 목록을 확대한 데 이어 약사법 개정으로 민관 공동 협의 구조를 마련하면서, 공급 중단과 품절 사태를 줄이기 위한 제도 정비가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희귀질환과 난임 등 민감한 치료 영역에서 의약품 확보 불확실성을 낮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6일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 정기회의를 열고 난임치료제와 마취제, 면역억제 보조치료제 등 10개 품목을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신규 지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신규 지정 품목에는 난임 시술 시 난포 발달을 자극하는 데 사용하는 루트로핀 주사제를 비롯해, 면역억제가 필요한 응급상황에서 보조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클로르페니라민 주사제, 전신마취 시 적용가능 범위가 넓은 치오펜탈 주사제가 포함됐다. 식약처는 이들 품목을 안정공급 지원 필요성이 높은 의약품으로 분류했다.

루트로핀 주사제는 난포 성장을 촉진해 배란과 착상을 돕는 난임 시술의 핵심 약제다. 국내 출산율 저하 상황에서 난임 치료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환자 치료 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관리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클로르페니라민 주사제는 항히스타민 계열 약물로, 급성 알레르기 반응과 같은 응급 상황에서 스테로이드 등과 병용돼 과도한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보조치료제로 활용된다. 치오펜탈 주사제는 전신마취 유도에 널리 사용되는 약물로, 다양한 수술 환경에서 적용 범위가 넓어 안정적 재고 확보가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회의에서는 단순히 상시 수요가 있는 필수약뿐 아니라, 특정 시점에 수요가 급증할 수 있는 품목까지 관리 범위를 확장하는 방향도 논의됐다. 식약처는 일시적인 수요 증가 등으로 공급 불안 가능성이 있는 품목을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의 관리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감염병 유행이나 특정 진료과 수요 급증과 같이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제도적 기반도 보강됐다. 식약처는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1일 공포된 약사법 개정 내용을 협의회 참여기관과 공유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국가필수의약품 관리체계를 세분화하고 민관 협력 구조를 강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 구체적으로는 국가필수의약품을 정부관리 품목과 의료현장 필수품목으로 구분해 관리 고도화를 도모하고,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를 민관 공동 참여 협의회로 확대 개편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협의회 관리대상에 국가필수의약품 외에도 일시적 수요 증가 등으로 안정공급이 필요한 품목을 포괄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협의회 논의 결과에 따라 제약사와 유통사 등에 안정공급 관련 협조를 공식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그동안 개별 업체와의 자율 협의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제도 기반이 있는 공적 조정기구 형태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셈이다.
식약처와 협의회는 국가필수의약품 제도 전반의 정비 방향과 향후 운영 전략도 논의했다. 난임, 희귀질환, 필수 수술과 관련된 마취제 및 응급의약품 등에서 어떤 기준으로 필수약을 지정할지, 공급 모니터링과 재고 확보를 어떻게 체계화할지 등이 주요 과제다. 특히 이번 조정은 국내 제약사의 생산 포트폴리오와도 맞물려 있어, 수익성이 낮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품목에 대한 지원 방식이 관건으로 떠오른다.
협의회 의장인 김용재 식약처 차장은 내년이면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 출범 10년을 맞는다고 언급하며 그간 참여 기관들의 협조에 감사를 전했다. 이어 대내외적으로 의약품 안정공급에 대한 정부 역할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협의회를 중심으로 공급 이슈 대응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공급망 불안 이후 국내외 제약 시장에서는 원료의약품 수급 차질, 특정 제네릭 약가 문제로 인한 생산 중단 등 복합 리스크가 반복되고 있다.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는 2016년부터 식약처에 설치돼 운영 중인 법정 협의체다. 보건의료상 필수적이지만 시장성 부족이나 제조 중단 위험 등으로 공급이 불안정한 의약품을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중장기 공급계획과 재고 관리, 대체약 확보 방안 등을 논의한다. 현재 국무조정실을 포함한 10개 중앙행정기관이 참여하고 있어, 복지·산업·재정 등 다부처 협업 기반을 갖춘 구조다.
식약처 관계자는 앞으로도 국가필수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현장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관계 부처와 병원, 제약업계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이 시기적절하게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는 이번 지정 확대와 법 개정이 실제 현장에서 공급 불안 해소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