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아래 걷는다”…괴산 산막이옛길에서 만나는 자연 속 쉼표
여행의 기준이 달라진 요즘, 자연 속에서 조용히 머무르기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대단한 명소나 화려한 도시가 인기였다면, 지금은 차분한 숲길, 물소리, 느린 풍경에 마음이 머문다. 산세와 맑은 호수가 어우러진 충청북도 괴산군이 바로 그런 곳이다.
흐린 하늘이 펼쳐진 9월 중순, 괴산에서는 가을의 정취가 서서히 깊어지고 있다. 기온은 27도를 넘기지만, 산막이옛길 숲길에 한 걸음 들어서면 햇살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그림자 아래,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른다. 괴산댐을 따라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진 10리 옛길—자연을 해치지 않는 나무 데크와 호숫가의 고요한 길이 서로 어깨를 맞댄다. SNS에서는 산책 인증 사진,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호수와 산의 조용한 풍경이 작은 자랑으로 번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여행 트렌드 통계에서도 공감된다. 휴양·힐링 여행을 우선하는 비율이 점점 늘고,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욱 가치 있게 여겨지는 흐름이다. 맞닿은 풍경마다 자연의 소리만이 자리하고, 한적한 산책로에는 들꽃과 이끼, 호숫가 바람이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닮은 듯 흐른다.
숲을 조금 더 오르면, 신라 시대에 지어진 천년 고찰 각연사가 있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이곳은 번잡함에서 한 발짝 떨어져, 무심코 자리를 펴고 앉아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한다. 사찰 주변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오래된 전각, 석탑들이 조용히 시간을 지켜온다. 여행객 민경 씨는 “특별한 체험보다 조용한 걷기와 사찰의 고요함이 더 큰 위로가 됐다”고 고백했다.
조금 더 내려와 칠성면의 꿀벌랜드에선, 벌꿀의 생태를 눈과 손으로 느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벌집을 들여다보고, 꿀벌의 세계를 배우는 체험 프로그램, 그리고 꿀차 한 잔을 머금으며 쉬어가는 카페까지. “자연을 가까이하는 경험에서 소소한 배움과 휴식이 동시에 따라온다”는 이곳의 해설사의 느낌처럼, 지금은 여행의 의미마저 달라졌다.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롭다. “걷기만 해도 힐링”, “한적한 산사에서 아무 생각 없이 머물렀다” 같은 후기가 많다. 누구나 쉽게 찾아와 영혼을 잠시 내려놓고 갈 수 있다는 점이 괴산 여행의 매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연과 함께 머무는 짧은 여행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에 스며든 작은 휴식이 돼가고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