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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4차 야간발사 성공”…한화, 민간발사체 시대 연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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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발사체 누리호가 첫 야간 비행에 성공하며 한국판 뉴스페이스 시대로의 진입을 알렸다. 발사체 기술 성능이 안정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제작을 총괄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전 과정에 본격 참여한 첫 사례로 평가되면서, 그동안 정부 중심으로 이뤄지던 우주 발사체 개발·운용 구조가 민간 중심으로 이동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우주 발사 서비스를 둘러싼 글로벌 민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발사체 상용화와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 확대의 속도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누리호는 27일 새벽 1시 13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이륙해 예정된 비행 절차를 순조롭게 수행했다. 1단 분리와 페어링 분리, 2단 분리에 이어 발사 후 약 12분 35초 만에 목표 궤도인 고도 600킬로미터에 도달했고 주탑재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를 계획 궤도에 성공적으로 분리했다. 이후 총 12기의 위성을 차례로 사출해 약 18분 만에 모든 임무를 마치고 비행을 종료했다. 우주항공청과 항우연은 이날 새벽 1시 55분 남극세종기지 지상국에서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초기 교신에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4차 발사는 2023년 5월 이뤄진 3차 발사와 비교해 누리호의 기본 제원이나 3단 액체추진 구조는 유지했지만, 임무 난도가 한층 높아졌다. 목표 고도가 550킬로미터에서 600킬로미터로 상향됐고, 탑재 위성 수가 8기에서 13기로 늘면서 총 탑재 질량도 460킬로그램 증가했다. 이에 따라 예상 비행시간은 3차보다 146초 늘어난 1284초, 약 21분 24초로 설정됐다. 같은 플랫폼과 엔진을 유지하면서 궤도 고도와 탑재량을 동시에 끌어올린 점에서 발사체 성능과 운용 알고리즘 최적화 수준이 한 단계 성숙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술적으로 이번 발사는 누리호 최초의 야간 발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발사체 구조나 연소 제어 원리는 주간과 동일하지만, 야간에는 기상 관측과 지상 설비 상태 감시를 위한 광학 계측 여건이 떨어지는 만큼 운용 인력의 사전 점검 절차와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가 더욱 정밀해야 한다. 발사 당일에는 엄빌리컬 압력 센서에 일시적인 신호 이상이 감지돼 예정됐던 0시 55분 발사 시각이 1시 13분으로 18분 늦춰졌지만, 센서 검증과 복구 절차를 거친 뒤 안전 범위 내에서 발사가 이뤄졌다. 실제 상황 기반의 장애 대응 능력과 체크리스트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야간 발사 시점은 주탑재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의 과학 임무를 최적화하기 위해 결정됐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는 고도 600킬로미터 태양동기궤도에서 지구 자기권 플라즈마와 오로라, 대기광을 관측한다. 이들 현상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입자와 지구 자기장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데, 관측 대상 신호가 매우 희미해 태양광 간섭이 최소인 야간과 새벽 시간대에 정밀 계측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위성이 적도를 지날 때 현지 시각이 정오 무렵이 되도록 하는 태양동기궤도 진입이 필요했고, 이 궤도 특성을 만족하는 최적 시간이 새벽 1시대 발사 구간으로 계산됐다. 결국 발사체 운용 관점에서 야간 비행 경험을 축적하면서도, 과학위성의 임무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궤도 설계와 발사 시각이 조율된 것이다.  

 

발사 준비 과정에서는 기상 변수도 시험 요소로 작용했다. 당초 25일 오전 7시 20분으로 예정됐던 누리호의 발사대 이송은 비 예보로 약 한 시간 반 지연됐고, 이후 기상 상황을 반영한 점검 일정 전체가 뒤로 밀렸다. 연구진은 전날 오전까지 발사대에 누리호를 세우는 작업을 진행하고, 유공압 엄빌리컬 연결과 누설 여부를 확인하는 기밀 시험을 완료했다. 실제 발사 운용에서는 기상 예보 오차, 해풍과 구름층 변화 등이 점검 체크포인트로 작동했고, 이러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 자체가 향후 반복 발사와 상업 임무에서의 리스크 관리 능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4차 발사는 정부와 민간이 역할을 나누는 새로운 발사체 개발 체계가 실전 검증을 받은 사례로 평가된다. 누리호 고도화 사업 구도 안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4차 발사부터 제작 단계 전반을 책임지는 민간체계종합기업으로 참여했다. 그동안 항우연이 주도하고 민간이 부품 공급과 일부 조립에 참여하던 구조에서, 민간이 시스템 통합과 품질 책임까지 맡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이다. 발사 안전과 신뢰성이 핵심인 발사체 분야에서 시스템 통합 주체가 민간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미국 스페이스X, 유럽 아리안 그룹 등과 유사한 궤적을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주항공청과 항우연은 2027년까지 누리호 고도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5차와 6차 발사를 추가로 수행할 계획이다. 이번 4차 발사가 첫 민관 합동 발사이자 첫 야간 발사라는 이정표를 남긴 만큼, 5차와 6차에서는 상용 임무와 연계한 탑재체 운송, 반복 발사 운용 능력 검증 등 민간 주도 발사 서비스 모델이 본격화될 여지가 크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제작 총괄 경험을 토대로 향후 발사 운용, 고객 발사 계약, 발사 서비스 패키지 제공 등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민간 발사체 경쟁이 치열해진 상태다. 미국에서는 스페이스X가 재사용 로켓을 기반으로 상업 발사 시장을 선점했고, 유럽과 중국 역시 차세대 발사체 개발과 민간 서비스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구도에서 한국 누리호의 반복 발사 경험과 야간 발사 같은 운용 스펙트럼 확장은 기술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향후 국제 발사 서비스 시장 진입을 위한 최소 조건을 갖추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재사용 로켓 기술, 발사 단가 경쟁력, 보험·위성 서비스와의 패키지 구성 등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는 지적도 있다.  

 

정책 측면에서는 우주항공청 출범을 계기로 발사체 개발과 위성 활용, 우주탐사 로드맵이 통합 관리되는 구조가 마련됐다. 발사체를 둘러싼 안전 규제와 발사장 인프라, 군·민 겸용 궤도 사용 조정, 우주잔해물 관리 등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특히 민간 기업이 발사 서비스 사업자로 나설 경우, 발사 실패에 따른 책임 범위와 보험 구조, 해외 고객 위성 발사 시 적용될 국제 규범 등이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누리호 4차 발사를 한국 우주산업이 기술 실증 단계에서 상용화 준비 단계로 넘어가는 분수령으로 바라본다. 반복 발사 경험이 축적되고 민간 기업의 역할이 확대될수록 발사체 단가를 낮추고 다양한 위성·탐사 임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발사체 기술 발전 속도만큼, 위성 활용 서비스와 데이터 산업, 관련 규제와 국제 협력 체계가 함께 정비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누리호의 야간 발사 성공과 민간 참여 확대가 실제 발사 서비스 시장과 새로운 우주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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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한화에어로스페이스#우주항공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