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달·화성 탐사도 데이터 경쟁"…우주청, 융합전략 모색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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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화성 등 심우주 탐사가 과학기술을 넘어 새로운 데이터 산업과 우주경제의 시험대로 부상하고 있다. 우주항공청이 달 및 행성 탐사 비전과 전략을 공유하며 연구기관·대학·해외 우주기관을 한자리에 모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과학기술뿐 아니라 사회과학 관점까지 결합해 논의에 나서면서, 향후 달·행성 탐사가 위성 데이터, 통신, 소재, 에너지, 우주 인프라 등 IT·바이오 융합 산업 전반에 어떤 파급을 낳을지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의가 국내 우주탐사 역량뿐 아니라 우주 데이터·서비스 시장 진입 전략을 가다듬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주항공청은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대전 호텔인터시티에서 달 및 행성 탐사 과학·기술·사회과학 융합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서 우주청은 대한민국 달 및 행성 탐사 중장기 비전을 공유하고, 우주탐사 기술 로드맵과 더불어 우주경제와 산업 생태계 구축 방향을 논의했다. 극지연구소, 기초과학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자동차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주요 출연연이 참여했고, 경희대, 부경대, 서울대, 카이스트 등 대학 연구진도 대거 자리했다.  

이번 워크숍의 특징은 우주과학·우주공학 중심의 전통적 탐사 논의에 사회과학과 정책, 경제 분석을 본격 결합했다는 점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달·화성 탐사 임무를 통해 확보되는 관측·지질·환경 데이터가 향후 우주 인프라 설계, 자원 탐사, 생명유지 시스템 개발, 나아가 지구 환경·기후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짚었다. 예를 들어 달 극지의 물 얼음 분포를 파악하는 탐사 데이터는 향후 연료·음용수 공급 기지 설계와 직결되고, 화성 표면·대기 분석 자료는 폐쇄형 생태계, 극한 환경 생명과학 연구에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번 기술 논의는 기존 우주개발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과거에는 개별 연구기관이 로켓, 탐사선, 센서 등 특정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하는 구조였다면, 이번 워크숍에서는 탐사 임무 설계 단계부터 데이터 활용 시나리오, 민간 기업의 서비스 모델, 규제·윤리 기준을 함께 설계하는 통합 접근이 강조됐다. 달 궤도와 표면에서 생산되는 영상·센서 데이터를 지상에서 어떻게 분석하고, 이를 기후 모니터링, 농업·해양 관측, 재난 대응 등 다른 산업용 데이터셋과 연계할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글로벌 협력 측면에서는 미국 항공우주국 제트추진연구소 전문가들이 온라인 강연으로 참가해 최신 탐사 기술과 운영 방법론을 소개했다. NASA JPL은 화성 로버, 달 궤도선, 소행성 탐사 프로젝트 등에서 축적한 자율항법, 원격 탐사 로봇, 고신뢰 소프트웨어 시스템 기술을 공유했다. 국내 연구진은 이를 국내 달·화성 프로젝트에 어떻게 접목할지, 그리고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통신, 센서, 소형 위성, 데이터 분석 기술과 결합해 차별화된 역할을 확보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달 착륙선, 운반 서비스, 지상국 네트워크, 우주 인터넷 등 상업 우주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어서, 한국형 우주경제 모델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시장성과 활용 측면에서 전문가들은 탐사 기술이 중장기적으로 IT·바이오 융합 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될 것으로 봤다. 달·화성 극한 환경에서 운용되는 센서, 로봇, 자율 시스템은 지구상의 스마트팩토리, 재난 현장 로봇, 원격 의료 시스템에 그대로 응용할 수 있고, 우주 방사선·미세중력 환경에서의 생명과학 실험은 신약개발, 세포치료제, 조직재생 연구와 연결될 수 있다. 실제로 미세중력에서 단백질 결정 성장 패턴, 세포 분화 양상을 분석하면 지상에서는 얻기 어려운 구조 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 향후 우주 실험 데이터가 제약·바이오 R&D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경쟁 구도 측면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이 이미 달·화성 집중 탐사 프로그램을 통해 각국 우주기업과 연구기관에 장기 과제를 제공하면서 산업 기반을 두텁게 키우고 있다. 미국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 업체를 대거 참여시키는 구조를 만들었고, 유럽은 달 통신·항법 인프라 선점을 노리고 있다. 일본과 인도는 소형 탐사선과 비용 효율적 발사체를 앞세워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은 아직 대규모 탐사 프로젝트 경험이 제한적인 만큼, 데이터 분석, 센서 융합, 우주 인터넷, 정밀항법처럼 IT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세부 영역에서 차별화된 위치를 차지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제도 관점에서 우주청은 이번 논의를 바탕으로 달·행성 탐사 기술 개발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우주경제 전략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우주 자원 활용, 탐사 데이터 공개와 민간 활용 범위, 우주쓰레기 관리, 우주 방사선 안전 기준 등 새로운 규제가 요구되는 분야도 함께 정리할 필요가 제기됐다. 사회과학 연구진은 우주개발 투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 데이터 공유와 민간 독점 방지,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 확보가 향후 사업 추진 속도의 관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원격의료와 연계되는 우주 생명과학 연구의 경우, 생체 데이터 보호와 의료윤리 기준도 선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우주청은 사회과학을 포함한 다학제 협력 체계를 강화해 탐사 임무 설계 단계부터 산업·정책·윤리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강경인 우주청 우주과학탐사부문장은 달·행성 탐사를 위한 과학과 기술, 사회적 가치가 결합된 협력의 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논의 구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이번 워크숍을 계기로 한국형 달·화성 탐사 전략이 데이터 기반 우주경제 모델과 어떻게 연결될지 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제도의 균형이 향후 우주 탐사와 IT·바이오 융합 산업 성장의 핵심 조건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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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청#달탐사#우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