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성 가상투자 확산…MZ 재테크 중독, 금융 IT도 경고등
고위험 가상자산 투자와 레버리지 상품에 MZ세대가 빠르게 노출되면서, 금융 IT 산업 전반에 ‘행동중독 관리’라는 새로운 숙제가 부각되고 있다.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과 가상자산 거래 앱이 투자 문턱을 낮췄지만, 그만큼 감정적·충동적 매매를 부추기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결혼자금을 도박성 투자로 날린 사례가 공유되며, 디지털 투자 인프라를 둘러싼 설계 책임과 알고리즘 윤리 논쟁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순 수수료 경쟁이 아닌, 투자자의 손실 통제와 중독 방지 기능을 갖춘 핀테크 플랫폼이 새로운 표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사연 속 여성은 대기업에 재직하며 연 8000만~1억원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30대 초반 직장인으로, 예식장 예약과 스튜디오 촬영까지 마친 상황에서 남자친구에게 고위험 투자 실패 사실을 뒤늦게 털어놓았다.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고배율 레버리지와 알트코인, 선물옵션 등에 집중 투자했다가 결혼 자금 대부분을 날린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가정사’에 가깝지만, 모바일 기반 가상자산·파생상품 시장이 얼마나 쉽게 일상 재무에 침투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근 고위험 투자 패턴의 중심에는 디지털 자산과 IT 기반 금융 서비스가 있다. 증권사 MTS와 가상자산 거래소 앱은 초단위 호가, 실시간 수익률 그래프, 자동 알림 기능을 결합해 사용자 체류시간과 거래 빈도를 최대화하는 구조로 발전해 왔다. 여기에 2배 이상 가격 변동이 나는 레버리지 ETF, 무기한 선물, 고배율 마진 거래 등이 결합되면서, 전통적 주식 투자 대비 손익 변동성이 수십 배로 커졌다. 심리학계에서는 이런 구조를 카지노의 슬롯머신 인터페이스와 유사한 ‘변동 보상 시스템’으로 분류하며, 행동중독을 촉발할 수 있는 UX로 지적해 왔다.
일부 가상자산 거래소와 해외 핀테크 기업은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해 ‘리스크 대시보드’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평균 레버리지 배수, 일간 거래 횟수, 연속 손실 일수 등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경고 메시지를 띄우거나, 일정 수준 이상 손실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포지션을 축소하는 기능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AI 기반 투자 코칭 솔루션에서는 과거 거래 패턴을 학습해 “손실 만회형 매매가 반복되고 있다”는 식의 피드백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다수 플랫폼에서는 여전히 거래 유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중독 관리 기능은 형식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많다.
시장성 측면에서 보면, 고수익 기대가 큰 고위험 상품일수록 핀테크 기업과 거래소에 돌아가는 수수료는 커지기 쉽다. 알트코인과 선물·옵션 상품 비중이 높은 플랫폼이 단기간 성장세를 보이는 이유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재무 건전성과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혼·주거·육아 자금이 고위험 디지털 자산으로 유입될 경우, 향후 소비 여력과 출산·주거 시장에도 충격이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당국이 최근 레버리지·인버스 상품과 코인 마진 거래에 대한 투자자 경고를 강화하는 배경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디지털 투자 플랫폼을 둘러싼 규제와 자율 통제가 본격화된 상황이다. 영국 금융감독청은 고위험 투자 광고에 ‘원금 전액 손실 위험’ 문구와 손실 확률 정보를 의무화했고, 일부 유럽 국가는 소액투자 앱에서 선물·옵션, 차액결제거래 등 고위험 상품 노출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소셜 트레이딩 앱의 ‘게이미피케이션’ UX가 청년층의 무분별한 옵션 거래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돼, 주문 화면에 경고 팝업과 교육용 콘텐츠를 의무화하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업법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논의 속에 디지털 자산의 투자자 보호 장치가 일부 포함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중독 방지 기준이나 알고리즘 설계 원칙은 아직 공백에 가깝다. 사연처럼 마이너스 통장이나 신용대출을 활용한 고배율 투자는 금융권 내부 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대출 용도와 실제 사용처를 실시간 분석해, 가상자산 거래 계좌와 연동된 패턴을 탐지·차단하는 데이터 분석 기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투자 인프라가 이미 생활 금융의 일부가 된 만큼, 책임 있는 설계와 심리·행동 데이터 기반 보호 장치가 산업 경쟁력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금융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사용자의 클릭 한 번이 가계 재무 구조 전체를 흔들 수 있는 환경이 됐다”며 “수익률 추천 알고리즘만 고도화할 것이 아니라, 과도한 위험 신호를 조기에 탐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디지털 안전장치’ 개발이 핀테크 업계의 다음 경쟁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고위험 디지털 투자가 낳는 개인의 파국적 사례가 계속 늘어날 경우, 플랫폼 규제가 투자자 보호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될 수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